"교수 직에서 은퇴한 뒤 소설을 주로 읽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작품이 오늘은 새롭게 읽히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의 좋은 점이죠."
문학평론가 김치수(70)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평론집 <상처와 치유>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펴냈다. 35년 동안 몸담았던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2006년 출간한 <문학의 목소리> 이후 4년 만에 낸, 그의 아홉 번째 평론집이다. 김씨는 서문에 "어느 시대 어떤 체제에서나 개인은 상처를 입고 고통 받는다. 문학은 그 상처와 고통의 정체를 밝혀주고 그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며 "(이러한) 문학 정신의 근본적인 양상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적어 책 제목의 연유를 밝혔다. 문학의> 상처와>
4ㆍ19세대의 문학동인지 '산문시대' 창간(1962), 문학과지성사 창립(1975) 등을 주도했던 김씨는 세심한 독서로 작가의 감각, 시대적 고민을 포착하는 '공감의 비평'으로 정평 있다. 작가들과 눈높이를 맞춰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그의 문학에 대한 애정은 세대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이번 평론집에서도 작고한 소설가 이병주 이청준 홍성원, 문단 중진인 정현종 시인과 소설가 김원일 최수철, 젊은 소설가 조경란 김연수씨 등 폭넓은 세대의 작가 12명에 대한 따뜻한 작품 비평을 실었다.
이처럼 열린 자세로 문학비평에 임하는 김씨이기에, 그가 최근 몇년 새 유행처럼 번진 '문학의 종언'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내놓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학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예컨대 서양에선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가 발흥했던 1960년대에 전통적 소설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서, 프랑스의 경우 이야기 인물 플롯 등 소설의 3요소를 실험적으로 제거한 '누보 로망'이 유행했다. 하지만 소설은 생물과 같아서 죽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미학을 개척했다. 문학의 종언은 곧 문학의 새로운 탄생을 뜻한다."
이야기의 힘을 주축으로 한 전통적 소설과, 내용과 형식에서 전복을 시도하는 전위적 소설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문학은 지속적으로 거듭난다는 김씨의 입장은 이번 평론집에서 "모든 진정한 문학은 끝없는 반기를 드는 것이고 저항하는 것이다. 그것이 문학을 살아 있게 만든다"는 문장으로 재차 확인된다. 그는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서정시의 시대는 갔는가' 등 한국문학이 당면한 질문을 그대로 제목으로 삼는 등 6편의 글에서 이러한 문학관을 피력했다.
김씨는 또 "문학 상업주의는 문학 독자의 저변 확장을 위해 필요하지만, 상업주의가 마치 작가의 평가 기준처럼 인식되는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며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작가들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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