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는 20일 서울 마포구 중부여성발전센터 강당에서 정기 총회를 열고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을 요구했다가 철회하고 사과한 데 대해 “사과 수용과 지원금 수령을 거부한다”며 “이명박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해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펼치겠다”고 의결했다. 총회에는 시인 고은 민영 신경림 정희성, 소설가 최일남 현기영, 평론가 백낙청 염무웅씨 등 원로 문인을 비롯해 170여 명의 회원이 참석했다.
‘문화예술위 확인서 요구에 대한 대응 방안’을 주제로 한 안건 토의는 참석자들의 발언이 줄기차게 이어지며 1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시인 도종환 전임 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윤정국 사무처장 등 문화예술위 직원 4명이 작가회의 사무실에 방문해 ‘사려 깊지 못했다. 지원금 3,400만원을 예정대로 지급하겠다’고 사과했다”고 그간의 경위를 밝혔다. 그러나 회원들은 “작가회의가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는 다른 단체의 문제도 함께 푸는 열쇠 역할을 해야 한다” “사태의 근본 책임은 문화예술위가 아니라 정부에 있다”며 지원금 수령 거부를 결정했다.
소설가 최일남 전임 이사장은 “한 1~2년쯤 잡지 안 내고 외국 작가 초청 안하면 안되나? 이번 일은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다. 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얼마나 황당한가를 보여주는 건데 작가회의가 이걸 받아야 하나”라며 “익명의 70대 문인이 작가회의의 결정을 지지한다며 사재를 털어 3,400만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작가들은 이어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펼치기로 의결하고 참석자 서명을 받은 뒤 작가회의 2,500여명 전 회원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고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작가회의 관계자는 “우선 회원들이 그동안 써온 정부 비판 글을 모아 작가회의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고, 향후 온ㆍ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글쓰기를 전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날 작가회의 총회는 제18대 이사장에 평론가 구중서(74)씨, 부이사장에 평론가 최원식씨와 시인 도종환 나종영 이은봉씨, 사무총장에 소설가 김남일씨를 선임하는 등 2년 임기의 새 이사진과 집행부를 구성했다.
구중서 신임 이사장은 “작가회의는 국내 문화예술, 시민운동 단체 중 대표 단체라는 사명감을 갖고 물질 중심, 권력 독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작금의 현실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로 끝나는 신동엽 시인의 시 ‘좋은 언어’를 언급하며 “좋은 언어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되새기고 비인간화한 현실을 정화하는 것이 문학인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구 이사장은 문화예술위의 확인서 요구 파문에 대해 “국가의 정신적 지위를 드높이는 사업에 국민 세금을 전달하는 의무를 가진 정부가 일어나지도 않은 불법 시위와 연계해 지원금 반환을 운운하는 것은 시비를 가리기조차 민망한 일”이라며 “모든 문화예술ㆍ인권ㆍ사회운동 단체와 관계가 되는 사안인 만큼 진정한 사회 발전과 창조적 대안을 함께 추구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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