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경의선 열차 안에선 탈북청소년 3명을 위한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기차는 서울역을 떠나 임진각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철커덩대는 8번 객차 안으로 졸업생 3명과 재학생, 학부모 80여명이 모여 들었다.
웅성대던 객차 안은 통로에 '셋넷학교 졸업식'이 적힌 현수막이 걸리자 이내 진지해졌다. 주인공은 강용수(25), 김소연(30ㆍ여), 이은별(21ㆍ여)씨. 박상영 교장과 이들 셋이 마주보고 섰다.
"위 세 사람은 학교 생활을 성실히 하여 이 졸업장을 드립니다. 셋넷학교 교장." 쏟아지는 박수를 싣고 기차는 그렇게 북을 향해 달려갔다. 축사가 이어지는 동안 졸업생들은 눈시울을 붉힌 채 먼 북녘에 시선을 고정했다. 모두들 마음만은 북의 고향을 향해 달리는 듯했다.
이날 이색적인 열차 졸업식은 박상영 교장이 "축하해줄 친지가 없는 학생들에게 가족과 친지를 기억하면서 졸업할 기회를 주자"며 마련한 자리였다. 먼 길을 떠나온 사람들이니, 그리운 이들을 향해 달리는 길 위에서 졸업식을 열자는 취지였다.
올해로 여섯 번째 졸업생을 배출한 셋넷학교는 탈북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다. 탈북청소년들은 남한에 정착할 때 다니는 하나원 내 임시학교인 '하나둘학교'에 2개월 간 다니는데,
셋넷학교는 그 이후 탈북청소년들이 사회에 진출해 적응하는 것을 돕고 있다. 남한 생활과 문화에 관련된 체험활동 프로그램도 운영하지만,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에게 기본학습과목 수업을 통해 대학 진학의 기회도 제공한다. 이번 졸업생 3명도 대학 진학을 계기로 학교를 떠나게 '늙은 학생들'이다.
2003년 어머니 누나와 남한에 정착한 강씨에게 졸업식은 누구보다 특별했다. 2003년부터 검정고시 준비에 들어간 그는 중ㆍ고교 과정 시험에서 모두 한번씩 탈락했다. 그때마다 방황해 공부를 접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식당 술집 호텔 휴대전화대리점에서 돈벌이를 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검정고시를 준비했던 강씨는 올해 입시에서 국민대 공과대학에 당당히 합격했다. 마침내 졸업장을 받아 든 강씨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절감했다.
아버지는 2006년 중국 베이징에서 남한으로 입국하려다 공안 당국에 적발돼 북으로 후송됐고, 수용소 안에서 숨졌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다. 탈북 이후 가장 북한 땅에 근접해보니 마음이 짠하다는 그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할 아들이 되도록 마음 단단히 먹겠다"고 했다.
가장 나이가 든 졸업생 김소연씨도 깊은 상념에 잠겼다. 김씨는 "내가 뭔가 해냈고 졸업하게 됐다는 것을 언니 오빠가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생각에 잠조차 오지 않았다"며 "열차 졸업식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했다. 2008년 남한에 입국한 김씨는 올해 숭실대 행정학과에 합격했다.
이은별씨는 성신여대에 입학한다. 남한 정착을 도와준 사회복지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이씨는"도움을 받은 것 이상으로 봉사하고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께 임진각역에 도착한 셋넷학교 재학생, 교사 학부모들은 임진각과 도라산역 일대를 둘러본 뒤 서울로 돌아왔다. 셋넷학교의 박상영 교장은 "졸업생들이 가족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만큼 또 다른 힘을 얻어서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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