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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우리의 등골 우리는 사교육비

입력
2010.02.2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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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경력 19년차인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이 그제 검찰을 떠났다. 전국의 여검사 중 서열 2위인 이옥(46) 부장검사다. 2003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TV토론을 벌였던 평검사 10명 가운데 홍일점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외아들이 고3이 돼 교육비가 많이 들어가고 대학에 진학하면 학비를 대야 하는데, 공무원 월급으로는 부족해 사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철이면 변호사 개업을 위해 옷을 벗는 중견 법관 및 검사들이 속출한다. 승진 인사에서 물먹지 않은 경우라면 열에 아홉은'경제적 어려움'이 사직이유다. "지법부장이나 고법부장 승진을 앞둘 때면 아이들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무렵인데, 월급으로는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판사들의 변이다.

대우가 얼마나 박하길래 만인이 부러워하는 판ㆍ검사 자리를 포기할까. 행시나 외시 출신이 5급 대우인 반면, 판ㆍ검사로 임용되면 3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다. 업무추진비 등 부대 지급액도 평검사 기준으로 월 100만원 가까이 된다. 실수령액이 초임 검사는 연 4,000만원, 부장검사는 8,000만원을 넘을 것이다. 본인들은 능력만큼 대우 받지 못한다고 불만이겠지만, 대한민국 월급쟁이 기준으론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판ㆍ검사도 감당 못해 사직

그런데도 중고생 자녀의 학원비나 과외비를 대기가 어렵다고 이구동성이다. 이들이 자녀에게 '특수교육'을 시키는 유별난 계층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중고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다.

아내는 결혼생활 19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가계부를 써왔다. 연말이면 항목별 월평균 지출액까지 계산해 기록한다. 지금도 책장 한 켠에는 세월의 때가 묻은 낡은 가계부들이 빼곡하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의 가계부를 펼쳐봤다. 월평균 기준 식비(41만→37만→44만원), 외식비(11만→7만→9만원), 주거비(23만→15만→19만원) 등 거의 모든 항목의 지출에 큰 변동이 없었다. 보험료와 세금, 경조비를 제외한 네 식구의 생활비는 월 150만원 남짓이다. 이렇게 자린고비로 살아도 살림은 늘 빠듯하다.

주범은 교육비다. 최근 3년 간 중ㆍ고생 두 자녀의 교육비(사교육 포함)는 월평균 126만→157만→198만원으로 치솟았다. 연 30% 가까운 증가율이다. 특히 사교육비는 물가상승률 범위로 움직이지 않는다. 중2와 중3의 단가가 다르고, 고1이 되면 한 단계가 또 뛴다. 허겁지겁 쫓아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올해 둘째가 고교에 들어가니 월 교육비는 200만원대 중반으로 뛸 게 분명하다. 부업을 하든지 다른 지출을 더 줄일 수밖에 없다. 고액 연봉을 받는 친구들도 삶의 질에선 별 차이가 없다. 자녀를 해외나 외국인학교에 보내느라 소득의 60~70%를 교육비로 쏟아 붓는 경우가 허다한 탓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한 해 교육비에 투자된 돈은 사상 처음 40조원을 넘어섰다. 2000년과 비교하면 가구당 교육비가 두 배 급증했다. 실질소득이 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비 지출만 늘다 보니 내수가 살아날 리 없다. 국가경제에도 부정적이다. 현재 사교육 산업 종사자는 100만명을 넘는다. 교육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다른 산업으로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약하다.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은 국민경제 전체의 구매력을 떨어뜨린다.

사교육비 부담은 저출산과 노인 빈곤의 주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노인 100명 중 45명은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순서로 배열했을 때 한가운데)의 절반이 안 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빈곤층이다. 소득의 대부분을 자녀 교육비에 쏟아 부은 탓이다. 그 결과 제대로 노후준비를 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노인 빈곤층 양산의 주범

전문가들은 나이 들어 후회하지 않으려면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고 3층연금(국민ㆍ퇴직ㆍ개인연금) 구조를 촘촘히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맞는 얘기지만,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내 자식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을 이성의 잣대로 억누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대학에 들어간다고 끝이 아니다. '이태백'을 벗어나려면 해외연수나 석사학위는 기본이다. 대한민국의 40, 50대는 지금 노인 빈곤층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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