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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 투병 시인 최하림 전집 출간 축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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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 투병 시인 최하림 전집 출간 축하연

입력
2010.02.1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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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저희 선생님이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원(41) 시인의 짤막한 인사말에, 최하림(71) 시인 주위에 둥글게 둘러 앉은 시인 제자들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18일 오후 최씨가 살고 있는 경기 양평군 서종면 자택 인근의 '갤러리 서종'에선 <최하림 시 전집> (문학과지성사 발행) 출간을 기념하는 조촐한 잔치가 열렸다. 1984~87년 최씨가 서울예술대학에 출강할 당시 가르쳤던 제자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엔 장석남(84학번) 박형준(85학번) 이병률 이승희 김충규 이기인(86학번) 이원 이진명(87학번) 등 시인 제자들을 비롯, 시인 김윤배 김기택 이창기 정끝별, 드라마 작가 이향희, 화가 임태규씨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봄부터 간암으로 투병 중인 최하림씨는 지팡이를 짚고 밝은 표정으로 부인 장숙희(69)씨와 함께 참석했다. 최씨는 특유의 조곤조곤한 말투로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과분한 자리를 마련해줘서 즐겁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최씨는 "그동안 써온 시를 정리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전집 출간을) 준비하다가 지난해 갑자기 암 판정을 받고 입원하기 전까지 정리를 마쳤다"고 말했다.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트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을 이번 전집 표지의 삽화로 넣은 것은 최씨의 요청이었다. 최씨는 1962년 미술 잡지에서 자코메티의 조각품을 처음 접했디. 최씨가 문학평론가인 고 김현, 김치수씨, 소설가 김승옥씨와 더불어 4.19세대 문학의 출범을 선구적으로 알린 문학 동인 '산문시대'를 결성한 해다. 이를 염두에 둔 듯 최씨는 이번 전집에 대해 "1962년과 오늘이 맞아 떨어져 복되게 생각한다"며 만족을 표했다.

<최하림 시 전집> 엔 최씨가 1964년 등단 이래 출간한 <우리들을 위하여> (1976), <작은 마을에서> (1982), <겨울 깊은 물소리> (1988),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1998), <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1998), <풍경 뒤의 풍경> (2001),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 (2005) 등 시집 7권의 수록작, 등단 전 습작, 2005~2008년 근작시 등 363편의 시가 실렸다.

1980년대 최씨의 시작(詩作)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문명의 폭력과 부정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면, 90년대 이후 그의 시는 자연과 내면의 소통을 추구하는 '풍경의 시학'을 보여준다는 평을 듣는다. 2006년에 쓴 산문에서 "나는 시론을 가진 시인이 되고 싶지 않다. 시를 가까이 느끼고 그것을 따라가는 시인이고 싶다"는 바람을 적었던 그는 이번 전집의 머리말에 "시간은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도 내 시들은 그런 시간을 잡으려고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시를 향한 식지 않은 열망을 드러냈다.

'자분자분' '가만가만' 등의 부사를 빌어 최씨의 조용한 성품을 표현한 제자들은 최씨를 두고 "한때 시 창작을 가르친 선생님을 넘어, 평생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는 인생의 스승"이라고 칭송했다. 이기인(43) 시인은 "잘 안 써지는 시를 두고 재능과 운을 탓하던 내게 선생님은 '좋은 시인이기 전에 성실한 생활인이 돼야 한다'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시고 몸소 그것을 실천하셨다"고 말했다. 장석남(45) 시인은 "선생님이 가족들과 떨어져 광주에서 직장에 다니실 때 혼자 찾아가서 하루 묵고 온 적이 있는데, 편히 주무시라고 건넌방으로 물러나는 내게 '왜 안방에서 나랑 같이 안 자냐'고 호통을 치셨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향희(44) 작가는 "시를 그만두고 드라마 각본을 쓰겠다고 말씀 드렸을 때 힘껏 격려해주시며 불안한 마음을 잡아주신 분"이라고 최씨를 기렸다. 정끝별(46) 시인은 "습작할 때부터 선생님 시를 읽으며 시감의 척도로 삼았다"며 "선생님을 뵐 때마다 마음이 맑아지고 세례를 받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최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들의 말을 경청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한 제자에게는 "아주 깨끗한 삶을 사는 친구라서 얼굴 자체가 시상(詩想)"이라고 말하는 등 덕담을 자주 건넸다.

제자들은 각자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스승에게 전달했고, 최씨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박형준(44) 시인은 이날 행사의 방명록으로 쓰인 송판에 '선생님, 봄이 오면 함께 산책 가요'라는 글귀를 남기며 스승의 쾌유를 기원했다.

양평=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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