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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비빔밥… 김밥… 누룽지에도… 피클, 한식 속으로 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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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비빔밥… 김밥… 누룽지에도… 피클, 한식 속으로 쏙~

입력
2010.02.1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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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피클 좀 더 주세요!"

식당에서 스파게티나 피자를 먹을 때 이 얘기 안 나오는 테이블 많지 않다. 포크로 피클을 콕 찍어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서양 요리 특유의 느끼함이 싹 달아나면서 입안이 상쾌해진다. 피클이 김치 자리를 대신하는 셈이다.

메인 요리를 좀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입맛을 돋워주는 '조연' 역할을 도맡아왔던 피클이 최근 요리 블로거들의 식탁에서 어엿한 '주연' 자리를 꿰차기 시작했다. 특히 서양요리랑만 어울렸던 피클이 한식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피클을 조연에서 주연으로 끌어올린 건 다름 아닌 '엄마표 손맛'의 힘이다.

아이와 임산부 입맛 돋우는 피클

인터넷 아이디 '조바심'을 쓰는 김정선(33)씨는 평소 두 아이에게 영양만점 비빔밥을 자주 해준다. 각종 야채 송송 썰어 넣고 달걀 하나 살포시 얹고 고추장에 쓱쓱 비비면 굳이 반찬 따로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보니 몇 숟갈 먹다 보면 맵다며 연거푸 물을 찾기 일쑤. 덜 매우면서 비빔밥 고유의 맛도 살리는 엄마만의 조리법이 필요했다.

"그때 피클이 눈에 들어왔죠. 저걸 다져서 넣어보면 어떨까 했어요. 생각보다 맛이 좋던데요. 비빔밥 파는 식당에선 고추장 맛을 내려고 물엿이나 올리고당을 넣는다는데, 피클이 더 좋을 것 같기도 해요. 고추장을 덜 넣어도 새콤달콤하니까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죠."

김씨는 내친 김에 김밥에도 피클을 넣어보기로 했다. 고슬고슬 지은 밥에 살짝 볶은 곤쟁이(밥새우)를 넣고 조물조물 섞었다. 김밥용 김 위에 밥을 살살 펴고 길게 자른 피클을 몇 개 얹은 다음 돌돌 말아 썰어냈다. 재료가 많지 않아도 곤쟁이의 짭짜름함과 피클 고유의 향이 어울려 색다른 김밥 맛이 연출된다.

둘째를 임신하고 육아휴직 중인 주정희(35·아이디 뽈뽀리)씨에게 피클은 특히 고마운 음식이다. 임신 10주 안팎이던 때 주씨는 입덧이 너무 심해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몸무게는 병원에서 걱정할 정도로 쑥쑥 빠지고 못 먹으니 속이 허해 입덧은 갈수록 심해졌다.

정말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먹을만한 반찬을 찾아보던 차. 평소 친정 어머니가 자주 해주던 새콤달콤 미역무침에 일반적인 오이 대신 피클을 길쭉하니 썰어 넣었다. 홍고추와 사과도 채 썰어 곁들였다.

"보통 오이를 넣을 때보다 맛이 진해져서 그런지 거짓말처럼 입맛이 돌았어요. 홍초를 살짝 치니까 감칠맛도 나고요. 덕분에 속이 좀 편해졌어요. 재료만 있으면 5분 안에 뚝딱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오래 서 있기 힘든 임산부에게 안성맞춤이죠."

버리는 물까지 요리로 재탄생

피클을 먹고 나면 남는 물. 주저 없이 버리는 게 보통이지만 유경애(44·아이디 상큼이)씨는 바로 이 물에 눈길이 갔다. 사실 피클 오이 특유의 새콤달콤함은 바로 이 물에 담가둔 덕이다. 고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를 둔 주부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잡곡밥에 소금 참기름과 함께 피클 물을 살짝 넣었다. 팬에 동글 납작한 모양으로 노릇하게 구워 누룽지를 만든 다음 치즈와 다진 피클, 새싹을 차례로 올리면 이름하여 '누룽지 카나페' 완성. 빵 대신 누룽지를 이용한 한국식 카나페인 셈이다.

"보통 누룽지가 구수함이 돋보인다면 피클 물로 양념한 누룽지는 초밥 같은 맛이 매력이죠. 새콤달콤하고 바삭바삭한 과자 같아서 아이들 간식으로 좋고, 와인 안주로도 잘 어울려요."

김치나 각종 채소 대신 피클을 넣어 만든 쇠고기말이도 유씨의 야심작이다. 양념에 재워둔 쇠고기에 밀가루와 머스터드 소스를 살짝 바르고 세로로 가늘게 자른 피클과 당근 팽이버섯을 올린 다음 김밥처럼 돌돌 말았다. 간장과 마늘 올리고당 레드와인과 함께 피클 물을 섞어 바글바글 끓인 소스에 말아둔 쇠고기를 올려 살살 돌려가며 구웠다. 첫 맛은 소스에 담긴 피클 물 특유의 향, 뒷맛은 쇠고기 고유의 씹는 질감이 잘 어울려 값비싼 안주 저리 가라다.

이들 3명의 블로거는 모두 음식전문잡지 에센의 프로슈머(기업의 제품개발이나 마케팅에 기여하는 소비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 맛이상하다 했더니… 피클, 전용 오이 써야

피클은 오이, 양파 같은 채소나 과일에 향신료를 첨가해 만든 서양식 장아찌다. 평범한 사이드디쉬 정도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지만 피클의 역사는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030년 지금의 북인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터키와 이라크를 아우르는 티그리스강 유역으로 오이를 처음 전파했다. 시원하고 아삭한 특유의 맛 덕분이었는지 오이는 곧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오이를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소금물에 담가 저장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피클의 시초다.

피클의 맛과 형태가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薩?시작한 건 아메리카 대륙에 서구인들이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점점 가정에서도 피클을 직접 만들어 저장해두고 먹게 됐다. 드디어 1871년 식품기업 하인즈가 처음으로 가공식품 형태의 피클을 유리병에 담아 선보였다.

피클은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물에 소금과 설탕 식초로 새콤달콤하게 간을 맞춘 뒤 3번 정도 끓인다. 오이와 양파를 취향에 맞게 썰어 병에 담은 다음 끓인 물을 붓는다. 이때 끓인 뒤 바로 부어야 오이의 사각사각함이 비교적 잘 유지된다. 통후추를 넣고 식힌 뒤 뚜껑을 닫아 냉장 보관하면 된다.

하지만 피클을 제대로 만들려면 피클 전용 오이를 쓰는 게 좋다. 미국과 유럽에서 10여 가지 품종이 생산되는 피클 전용 오이는 보통 오이보다 작고 통통하다. 국내에선 재배되지 않는다. 피자나 스파게티 같은 서양 요리를 시킬 때 함께 나오는 피클 가운데는 중국산 일반 오이를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해 만든 것도 있다.

요리블로거 김정선씨는 "일부 식당에선 껍질 안쪽이 무르고 씹었을 때 질긴 느낌이 나는 피클도 볼 수 있다"며 "피클 전용 오이로 만든 피클은 베어 물었을 때 특유의 아삭함이 그대로 살아난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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