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인의 표현에 따르면 음악 표절의 문제는 '회색지대'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사 여부를 실증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회화나, 인용 사실을 따옴표나 각주로 표시할 수 있는 합법적인 기제가 발달한 글과 달리, 음악에서는 유사성 여부를 청자의 주관적 느낌에 의존해야 하는 정도가 크다.
대중음악의 표절 시비가 최근 들어 종종 일어나고 있다. 물론 세간에 회자가 되는 노래일수록 대중에 노출될 기회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유명 가수의 인기곡이 표절 논쟁에 휘말리는 현상은 우리 음악산업의 빈곤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음악이 표절 문제에 보다 연루되기 쉬운 사회적 조건이 존재한다. 음악데이터가 무한 재생산이 가능한 디지털 방식으로 생성ㆍ유통됨으로써 인기곡들의 '패턴'이 복사ㆍ재생산되기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해외 팝 차트 상위곡은 발표되기가 무섭게 전 세계 워너비 음악가들에 의해 채집ㆍ분해돼 그럴 듯하게 조합한 음악이 재탄생할 수 있다. 이러한 공식에 따라 만들어진 곡은 대부분 친숙해 백발백중 성공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음악팬들의 확장된 소비문화 역시 음악의 표절 내지 표절의 고발문화 활성화에 한층 기여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해외 음악을 속속들이 찾아 듣는 것이 자유로워진 상황에서 대중적 음악비평이 역시 인터넷의 블로그나 음악동아리 활동을 통해 쉽게 여론으로 확산될 수 있다.
심지어 표절의 모호성을 변호하기 위해 문화란 애초부터 인용과 모방의 그물망이라는 이론적 설명까지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창작행위는 작가의 의도를 넘어선 일종의 문화적 무의식 활동으로 설명된다. 작가는 자신의 잠재의식으로 존재하는 문화적 저수지로부터 자원을 끌어내 영감, 음감처럼, 나름의 조합과 논리로 창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선별과 조합의 독창성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표절은 정당한 것인가? 우리는 이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해 지금까지 제시한 온갖 표절의 모호함에 대한 변호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래서 표절은 나쁜 것이라는 역설적인 결론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역시 표절 문제를 회색지대라 본 지인의 해석에 비춰 볼 때 제대로 된 음악문화에서라면 법적 소송 혹은 루머성 논쟁에 휘말리기 전에 독창적 모방의 창조성과 표절적 모방의 천박함을 분별할 수 있는 미학적 기준이 음악의 장 내부에 우선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더욱 성장해야 하는 바, 음악 생산과 비평의 전문성과 자율성 확대의 문제와 직결된다.
또한 현 음악산업의 질서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아이돌의 댄싱뮤직만이 음악시장의 상품가치를 독점한 상태에선 그 어떤 다른 음악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인디의 풋풋함의 미학이든 전통가요의 뽕짝의 미학이든 힙합의 불온의 미학이든 다양한 미학적 가치들이 절멸의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작가의 무의식 역시 온전하게 유지되기 어렵다.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가치 대신 남의 것을 베끼면서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저속한 시장적 DNA가 그의 문화적 잠재의식을 통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표절을 양산하는 대중적 무의식이 이미 사회적으로 전염됐다는 생각이 든다. '9시 뉴스' 대신 '오빠'에게 '누나'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애교를 부리는 아이돌 그룹의 예쁜 모습에서 위로를 얻는 것이 자연스런 생존 무의식으로 자리잡은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라면, 음악의 시장화된 창작 및 소비 미학을 누가 탓하고 막을 수 있겠는가라는 자탄이 드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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