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낙원동 옛 허리우드극장에 자리한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다. 진보 성향의 젊은 영화인들이 주축이 된 민간 단체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가 2002년 설립한 일종의 영화도서관으로, 거대한 콘크리트 도시 서울에서 문화적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한시협 활동의 공공성을 인정,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 명목으로 연간 예산의 30%가량(4억 5,000만원)을 보조하고 있다.
최근 독립영화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공모 과정의 의혹으로 말썽을 일으킨 영진위가 이번에는 이 시네마테크 전용관 사업자를 공모하겠다고 나서 다시 영화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한시협은 공모 자체가 부당하다며 영진위와 심각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산의 30%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기존 운영자의 사업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공모를 시행하겠다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 한시협의 항변이다.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일종의 브랜드를 공모 공고에 명시한 점도 한시협을 자극했다. 한시협은 "서울아트시네마는 한시협이 만든 독자적 명칭인데 영진위가 이를 가로채려 한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결국 한시협은 17일 공모 불참을 결정했고, 18일 마감한 공모에는 응모자(단체)가 아무도 없었다. 수억원대의 지원금이 공중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영진위는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모를 실시했다. 능력 있으면 당당하게 공모에 참여하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영진위가 지난달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뉴라이트 계열 단체를 위해 '정실 심사'를 했다는 의혹이 불신을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희문 영진위원장은 지난 1일 독립영화전용관 등의 공모 의혹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에서 "운영상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다음(평가와 계약)에 반영하면 된다"고 말했다. 결과야 어찌되든 일단 강행하고 보자는 행정편의주의가 엿보인다. 공모는 만능이 아니다. 영진위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지금, 밀어붙이기식 공모는 반발만 부를 뿐이다.
라제기 문화부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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