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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동계올림픽/ 무관의 캡틴 이규혁 "16년을 꿈꿔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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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동계올림픽/ 무관의 캡틴 이규혁 "16년을 꿈꿔왔는데…"

입력
2010.02.18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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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의 절반도 남지 않은 지점까지 선두였다. 400m만 이대로 달리면 16년간 가슴을 짓눌렀던 한(恨)과도 안녕이었다. 그러나 출발 총성이 울릴 때부터 이를 악물고 달려서였을까. 막상 스퍼트를 해야 할 때가 다가오자 다리가 말을 안 들었다. 자꾸만 숙여지는 고개를 억지로 쳐들고 양 팔을 더욱 크게 흔들어봤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건 조금씩 멀어져 가는 옆 라인 파트너뿐. 몸에 남아있는 힘을 전부 짜내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확인한 기록은 기대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트랙 중앙 대기코너에 누워 한숨을 몰아 쉬는 것뿐이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대표팀의 맏형이자 간판스타인 이규혁(32ㆍ서울시청)이 '비운의 스타' 꼬리표를 떼는 데 끝내 실패했다. 이규혁은 18일(한국시간)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에서 벌어진 밴쿠버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1분09초92를 기록, 선두에 0.98초 뒤진 9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이틀 전 500m 15위에 이어 또다시 메달 획득 불발. 사실상 마지막인 5번째 올림픽도 끝내 그에게 등을 돌렸다. 이규혁이 처음 올림픽에 데뷔한 때는 94년. 당시 나이 16세였다. 이후 16년의 세월이 흘렀고, 올림픽 출전 횟수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4전5기의 각오로 밴쿠버를 정조준한 이규혁은 "이번만은 반드시"를 외쳤다. 지난 4차례 올림픽에서 한 개의 메달도 챙기지 못한 그였다.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3개,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 4개 등 세계 정상의 스프린터로 이름을 떨쳤으나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어느 때보다 준비도 철저히 했고, 직전 대회 성적도 최고였다. 하던 대로만 하면 메달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이번 시즌 월드컵 세계랭킹에서 이규혁은 500m 2위, 1,000m 3위에 오르며 서른이 넘은 나이에 다시 전성기를 맞은 듯 했다. 지난달 중순 일본에서 열린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500m, 1,000m 총 4차례 레이스 합산)에서 우승, 올림픽을 앞두고 쾌조의 컨디션을 뽐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올림픽 무대에 서자 또다시 불운이 발목을 잡았다. 500m에서는 정빙차량이 고장 나면서 1시간30분을 쉰 탓에 리듬이 깨졌고, 1,000m에서는 스퍼트 때 힘이 모자랐다. 이날 모태범에 바로 이어 17조에서 출발한 이규혁은 600m까지 41초73을 기록, 선두보다 0.02초 빠른 기록으로 메달 기대를 높였으나 마지막 400m를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경기 후 이규혁은 모태범의 은메달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린 뒤 후배를 안아주고는 예정된 출구가 아닌 다른 곳을 통해 쓸쓸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출전 종목을 전부 마친 이규혁은 20일께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대표팀에서 10년 넘게 이규혁을 봐온 문준(28ㆍ성남시청)은 "(이)규혁이 형이 이번엔 정말 간절해 보였다. 꼭 딸 줄 알았는데 바로 밑 후배 입장에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가슴이 아프다. 500m에서의 부진이 1,000m까지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고 말하는 김관규 대표팀 감독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한편 피겨 국가대표를 지낸 이규혁의 어머니 이인숙(54)씨는 "아들이 올림픽에서 유난히 실력 발휘를 못하는 것 같아 너무 아쉽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고맙다"면서 "그래도 규혁이가 세계 최고였다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알 것"이라고 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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