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번역원 '협동번역·고전 강독 지원' 사업 추진
반만년이라는 연대에 비해 한국사의 사료는 무척 빈약하다. 고려 이전의 사료는 극히 드물어 고대사는 거의 중국 사료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조선은 기록문화가 꽃핀 시대였다. 아직 탈초조차 못한 한문 고전이 4,000여 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속도대로라면 번역에 100년도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속도를 높여 30년 안에 작업을 끝내기 위한 청사진을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이 마련했다.
번역원이 10일 발표한 국가번역시스템 구축안은 '권역별 거점 연구소 협동 번역사업'과 '고전 강독 클러스터 지원사업'이 뼈대다. 지금껏 수도권의 몇몇 대학이나 연구기관 중심으로 해온 번역 작업을 전국화하고 번역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것이다. 번역원은 "현재의 시스템과 인력으로는 한 해에 20권 번역도 힘들다"며 대대적인 인프라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번역원은 전국을 수도권, 중부권(강원 및 충청), 영남권, 호남권(제주 포함)의 4개 권역으로 나눠 지역별로 거점 연구소를 선정해 지원할 방침이다. 우선 올해 중 중형 연구소 6곳과 소형 연구소 4곳을 지정해 총 21억원을 지원, 48책의 번역을 마칠 계획이다. 거점 연구소마다 4~7명의 연구인력이 번역 작업을 전담하게 된다. 번역원은 3월 초까지 지원을 받아 4월 중 대상 연구소를 확정할 예정이다.
거점 연구소의 번역 대상은 원전정리가 이뤄진 한국문집총간 정편에 수록된 문집 중 완역ㆍ선역된 213종을 제외한 450종 가운데 7만자 이상인 312종이다. 권역별로 자기 지역과 연관성이 높은 문집류 등을 위주로 번역을 진행한다. 예컨대 수도권 연구소는 조선 전기 설화문학의 정수인 유몽인(1559~1623)의 '어우집(於于集)', 영남권 연구소는 진주 출신의 조선 중기 청백리였던 강백년(1603~1681)의 '설봉유고(雪峯遺稿)'를 맡는 식이다.
고전 강독 클러스터는 거점 연구소와 연계해 지도 교수와 학생들의 강독 모임을 지원함으로써 잠재적인 번역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제도다. 번역원은 1차적으로 올해 교수 1명과 학생 4명 정도로 이뤄진 모임 20개에 500만원씩 총 1억원을 지원한다. 선정된 모임은 연 단위로 평가 과정을 거쳐 지원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 번역원은 지원 규모를 연차적으로 확대해 2012년에는 전국에 20개 거점 연구소와 140여명의 지역 번역 인력풀을 확보할 계획이다.
고전 번역은 단순히 한문을 한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고 각종 고유명사와 연대기 등을 정밀하게 고증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1970년대 시작된 '조선왕조실록'의 완역에 22년이 걸린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번역원은 "실록보다 훨씬 방대한 역사 기록인 '승정원일기', 그리고 집계조차 못한 개인 문집 등이 산더미 같지만 번역 시스템이 완비되면 매년 약 120책씩 번역해서 30년이면 주요 문헌의 한글화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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