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한국시간) 밴쿠버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모태범(21ㆍ한국체대)은 '깜짝 우승'이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기대도 하지 않던 금메달이라 지금 이 기분을 도대체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운으로 몰아가기엔 금메달이 지닌 가치가 너무 높다. 상위권 랭크를 넘어 전세계 1인자로 우뚝 서기까지는 남다른 비결이 있었다.
울퉁불퉁 빙질도 울고 간 강철체력
모태범은 1차 레이스에서 13조(전체 20조)에 포함됐다. 정빙차량 고장으로 경기가 '올스톱'됐던 때가 10조 경기 직후. 모태범은 1시간 이상 지연으로 심리적 리듬이 깨진 데다 빙질도 정상과 거리가 멀었지만, 34초923으로 2위에 올랐다.
개인 최고기록 34초48에는 못 미치는 기록이지만, 최악의 환경에서 일군 최상의 성과였다. 모태범은 폭발적 추진력으로 빙질의 방해를 뿌리쳤다.
김관규 대표팀 감독은 "(모)태범이는 중ㆍ장거리 전문이라 힘으로 스케이팅하는 스타일이다. 정빙차량이 균일하게 물을 뿌리지 못해 빙질이 무르고 울퉁불퉁했지만, 파워가 좋다 보니 박차고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전설과의 조우
캐나다의 제레미 워더스푼(34)은 빙속 역사를 통틀어 손가락에 꼽히는 전설의 스프린터. 올림픽메달은 1998년 딴 500m 은메달이 전부지만, 세계선수권대회 우승만도 8차례에 이르는 강자 중의 강자다. 현재 500m 세계기록(34초03)도 그가 보유하고 있다.
1차 레이스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2차 레이스 조 편성에서 모태범은 워더스푼과 함께 19조에서 뛰었다. 옆 레인에 강자가 배정되면 객관적 전력에서 뒤지는 상대는 레이스가 수월한 법.
"1차 후 워더스푼과 한 조가 됐을 때 왠지 자신감이 붙었다"는 모태범은 "초반 100m에서 워더스푼을 조금이라도 앞서고, 첫 코너(전체 4개 코너)를 잘 돌면 메달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설과 발맞추리라 마음먹은 모태범은 오히려 전설을 압도했다. 100m를 9초61에 주파한 모태범에 비해 워더스푼은 9초69로 뒤졌다.
2차 레이스를 끝낸 결과는 모태범이 34초906, 워더스푼은 35초188. 모태범은 금메달을 확정했고, 워더스푼은 9위에 그쳤다.
허허실실, 부담제로
1,000m 세계랭킹 2위 모태범에게 500m는 몸풀기 무대였다. "1,000m에서 잘하려고 500m에서 미리 속도훈련을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정빙차량 고장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초조해 하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모태범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넘쳤다. 어차피 모태범에게 이날 500m는 훈련의 하나였기 때문.
또 2차 기록이 1차보다 떨어지는 게 보통이지만, 모태범은 2차에서 더 힘을 내 0.017초를 줄였다. 모태범은 "1차 이후 약간 기대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레이스에 임했다"고 밝혔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pir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