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스케이팅, 74년의 한 풀었다.'
16일(이하 한국시간) 모태범(한국체대)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올림픽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가 최초로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36년 독일 칼밋슈대회.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등 3명은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달고 경기에 나서며 동계 올림픽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국 대표선수로는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대회에 나선 이효창과 이종국 문동성 등이 처음이다.
이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장거리에서 간혹 한국신기록을 냈을 뿐 올림픽과 인연을 맺지 못하다 1970년대 이영하의 등장으로 새 전기를 맞게 됐다.
이영하는 1976년 1월 세계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첫 메달에 대한 기대를 모았다. 76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회를 시작으로 3개 대회에 연속 출전했지만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은퇴할 때까지 각종 국제 선수권대회에 참가해 51회나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운 그였지만 '올림픽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이영하의 뒤를 이어 배기태가 88년 캘거리대회 500m에서 36초90의 기록으로 5위에 올라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배기태는 90년 노르웨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으로 금메달을 딴 데 이어 그 해 제2회 동계아시안게임에서 1,000m와 1,500m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 뒤 은퇴했다.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의 주인공은 1992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으로 떠오른 김윤만. 김윤만은 알베르빌대회 남자 1,000m에서 1분14초86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에 동계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안겼다.
이후 쇼트트랙이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동안, 스피드스케이팅은 단 한 개의 메달을 따지 못한 채 기억 속에서 잊혀지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이강석이 남자 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 14년 간 이어진 '노메달의 한'을 풀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기대를 모았던 이강석(의정부시청)과 이규혁(서울시청)이 각각 4위, 15위에 그치면서 멀어지는 듯 했던 금메달은 무명에 가까운 모태범의 깜짝 등장으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74년 묵은 금빛 숙원을 풀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