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가 열린 14일(한국시간) 퍼시픽 콜리시엄. 쇼트트랙 최강국 한국은 출전 선수 3명이 전부 결선에 진출했다. 스타트 라인에 선 7명 중 한국이 3명, 미국이 2명, 캐나다와 중국이 각각 1명이었다.
한 팀에서 3명이 한꺼번에 출발하면 작전 짜기도 어려울뿐더러 돌발 상황도 걱정될 터. 우려는 현실로 이어졌다. 피니시 라인을 불과 15~20m를 앞두고 순위는 이정수(21ㆍ단국대)-성시백(23ㆍ용인시청)-이호석(24ㆍ고양시청) 순. 금-은-동을 싹쓸이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3위로 달리던 이호석이 이때 안으로 파고들며 추월을 시도하다 성시백과 충돌, 그대로 나뒹굴고 말았다. 이들과 다소 떨어져 있던 이정수는 금메달이 확정됐지만, 은ㆍ동메달은 아폴로 안톤 오노와 J.R. 셀스키(이상 미국)의 차지였다. 피니시 라인 통과 후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동료들의 실격을 확인한 이정수는 금메달 쾌거에도 웃지 못했다.
찜찜한 마음으로 15일 같은 장소에 선 대표팀은 무거운 표정으로 훈련을 마쳤다. 이날 퍼시픽 콜리시엄에는 성시백의 어머니 홍경희씨가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막판 파고들기로 죄인 아닌 죄인으로 몰린 이호석은 훈련 직후 관중석으로 올라가 홍씨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에 홍씨는 "너도 마음이 편치 않겠다. 상심치 말고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달라"며 이호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홍씨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다 아들 같은데, 욕심을 내다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면서 "(이)호석이는 (성)시백이와 14,15년을 같이 운동한 아인데, 둘 다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이호석과 성시백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료이자 라이벌로 동고동락해 왔다.
예전에는 한 팀에서 여럿이 결선에 오르면 선두로 통과할 선수와 페이스메이커를 미리 정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은 3바퀴 정도를 남기고는 일절 작전을 걸지 않고 선수에게 맡긴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었다.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은 "성시백의 경우 밖으로 크게 빠졌다가 안으로 들어가는 거였는데, 이호석 입장에서는 빈틈을 노리다가 성시백이 빠지니까 안으로 들어간 것 같다"면서 "이호석이 넘어지면서 그래도 끝까지 손을 짚지 않아 이정수까지 피해를 주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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