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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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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가족

입력
2010.02.15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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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 '겁(劫)'이란 시간이 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이 겁인데 그 비유가 흥미롭다. 둘레가 40리 되는 성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 넣고 장수천인(長壽天人)이 3년에 한 알씩 가져가서 모두 없어지는 시간을 겁이라 한다. 또 둘레가 40리 되는 바위에 장수천인이 3년에 한 번씩 가벼운 하늘옷을 입고 내려와 살짝 스쳐서 그 바위가 다 닳아 사라지는 시간도 겁이라 한다.

초고속 계산기를 가진 현대수학이 이 겁의 답을 계산할 수 있을까? 둘레 40리의 성을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4㎞인 통으로 보자. 그 안에 직경이 1㎜, 무게가 1㎎쯤 되는 겨자씨가 빼곡히 들어있다. 겁은 그 통 속의 겨자씨를 3년에 한 알씩 가져가서 모두 없어지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가를 묻는 문제다. 불가에서 이 겁으로 사람의 인연을 말한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옷깃 한 번 스치고 지나가는데도 500겁의 인연이 있다. 가족의 인연은 더 많은 겁의 시간이 필요하다.

7,000겁의 인연이 있어 부부가 되고, 8,000겁의 인연이 있어 부모자식이 된다. 형제자매에는 9,000겁의 인연이 있다. 겁도 계산하기 어려운데 7,000, 8,000, 9,000겁은 어떤 시간일까? 무한 무량한 인연 속에서 '가족'이 만들어졌다. 설날이 코밑이다. 겁의 인연이 있었기에 가족이 모두 모이는 즐거운 명절이다. 근하경인(謹賀庚寅)!

시인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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