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볼라뇨 지음ㆍ우석균 옮김/열린책들 발행ㆍ176쪽ㆍ9,800원
칠레 출신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1953~2003ㆍ사진)가 2000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내년까지 총 12권으로 출간될 '볼라뇨 소설 선집'의 첫 번째 책이다. 20대 초반에는 멕시코에서 전위적 문학 운동을 펼쳤고, 이후 스페인에 정착해 창작에 전념했던 볼라뇨는 마르케스, 보르헤스, 푸엔테스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활약했던 1960년대 이후의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다.
150여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이 단 두 단락으로 쓰여진 <칠레의 밤> 은, 칠레의 저명 문학평론가이자 신부인 주인공이 임종 직전에 삶을 회고하는 독백 형식을 취한다. 소설에서 끝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늙다리 청년'이 찾아와 자기 행적을 비난하는 데 맞서 주인공이 자기 정당화의 열변을 토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하지만 그가 자기를 변호할수록 아옌데 민주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한 피노체트 정권에 기생했던 칠레 지식인 사회의 추악한 면모가 점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칠레의>
동성애자인 문단 권력자와 친분을 맺고 문단에 발을 들인 주인공은 피노체트가 집권한 직후엔 쿠데타 세력들에게 '칠레의 적들을 이해하도록' 마르크스 이론을 가르치며 권력과 결탁한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예술가들을 위한 파티를 열던 '마리아'의 저택이 실은 비밀정보국 요원인 그녀의 미국인 남편이 칠레의 정치범을 고문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계속 드나든다. 쿠데타 세력의 선생 노릇을 한 평론가, 자기 집을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정치범 고문실로 삼았던 유엔 여직원, 이들 모두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에 실존했던 이들이다.
군사정부가 무너진 뒤 조변한 예술가들의 인심을 탓하며 폐허가 된 마리아의 집에 찾아간 주인공에게 그녀는 "칠레에서는 다 이렇게 문학을 한다"고 냉소한다. 주인공은 독백한다. "하지만 어디 칠레에서만 그런가. 아르헨티나, 멕시코, 과테말라, 우루과이, 스페인, 프랑스, 독일, 푸르른 영국과 즐거운 이탈리아에서도 그런 걸.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아니 우리가, 시궁창에 처박히기 싫어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들 한다고."(152쪽)
주인공의 광기 어린 강변은, 시종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필치와 더불어, 일그러진 칠레 현대사에 대한 작가의 냉소와 풍자를 극대화한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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