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범(21ㆍ한국체대)이 밴쿠버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16일(한국시간).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 믹스트존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외국 취재진들로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번 시즌 월드컵시리즈 성적으로 매긴 세계랭킹에서 모태범의 순위는 14위. 금메달은 물론 메달권 진입도 예상 못한 각국 취재진은 인터뷰 전 모태범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눈에 보이는 한국 취재진을 닥치는 대로 붙잡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국내에서도 모태범은 관심 밖이었기 때문에 미리 파악된 정보가 없었다. 급기야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 외신기자는 "인터넷을 뒤져도 당신에 대한 얘기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얘기를 좀 들려달라"고 모태범에게 직접 묻는 웃지 못할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선수단이 메달을 딸 때마다 반복됐다. 이번 대회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따낸 메달리스트들은 전부 이변의 주인공. 이들 3인방이 보란 듯이 예상을 비웃으며 '사고'를 치면서 한국선수단의 초반 메달 레이스가 무섭게 달아오르고 있다.
스타트는 이승훈(22ㆍ한국체대)이 끊었다. 이승훈은 14일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 아시아 최초의 빙속 장거리 메달리스트 타이틀을 안았다. 더욱이 이승훈은 쇼트트랙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해 스피드스케이팅으로 갈아탄 지 불과 7개월 된 '햇병아리'. 출전 직전까지 쇼트트랙에서 훈련하며 코너링을 집중 훈련한 게 도움이 됐다고는 하지만, '10위만 해도 대박'이라는 예상과 비교하면 은메달 획득은 기적에 가깝다.
같은 날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정수(21ㆍ단국대)도 이호석(24ㆍ고양시청), 성시백(23ㆍ용인시청) 다음으로 꼽히는 3인자였다. 단숨에 선두를 따라잡는 폭발력도 다른 한국선수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 받아왔다. 그러나 이정수는 영리한 레이스 운영으로 순간 돌파력 미흡을 완벽하게 메웠다. 이날 결선 스타트 후 중ㆍ하위권에서 빈틈을 노리던 이정수는 레이스의 흐름을 철저히 머리 속에 담았고, 4바퀴를 남겨두고는 마침내 앞선 선수들의 허를 찌르는 앞지르기로 주도권을 뺏었다.
모태범, 이승훈, 이정수의 공통점은 이번이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이라는 것. 셋은 전부 "운이 좋으면 동메달 정도는 가능할 거라 예상했다"거나 "메달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밴쿠버=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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