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들 갑자기 세상 떠나자 막막"손자 럭비부 활동 등 밝게 자라 다행"
대구 서구 비산동 김호영(77) 할아버지는 겨울 내내 동상으로 고생했다. 손자 대환(15ㆍ중2)군과 같이 사는 15만 원짜리 월세방에 난방을 땔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찬 물로 밥을 하고 빨래를 해도 손발을 녹일 수 있는 아랫목은 없었다. 매월 정부보조금 57만원으로 버텨야 하는 이 조손(祖孫)가정에 난방은 사치였다.
보름 전만 해도 3대가 살았다. 김 옹의 아들 상훈(47)씨가 함께 살았는데 지병인 간암으로 지난달 19일 대구가톨릭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치료를 받던 중 같은 달 30일 세상을 등졌다. 남자 3명이 살던 가정이 졸지에 조손가정으로 바뀐 것이다.
상훈씨는 10년 전 이혼 후 줄곧 객지 생활을 하면서도 푼돈이나마 집에 보탰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떠돌이 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면서 생계가 막막해졌다. 이제 세상에 외롭게 남겨진 할아버지와 손자가 세파를 헤쳐가야 하지만 김 옹은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다.
2006년 췌장에 생긴 혹을 12시간 수술 끝에 떼어낸 그는 목욕탕에서도 2번이나 기절, 119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온 몸에 갑자기 힘이 빠져 도로에 곤두박질 치면서 치아가 하나 부러지고 얼굴이 온통 멍투성이가 된 적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월 초까지 방을 빼줘야 한다. 월세를 제때 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임대주택을 신청했지만 된다는 보장도 없다. 김 옹은 "아들 장사를 치르고 남은 10만원을 월세로 겨우 보탰다. 한 뼘의 공간이라도 맘놓고 누울 수 있는 집이 있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나마 학교 럭비부에서 활동 중인 대환이가 밝게 자라서 다행이다. 운동에 두각을 보이고 있어 고교도 럭비부가 있는 곳으로 진학할 생각이다. 마침 이날 구미에 사는 친척 이지은(71) 할머니가 떡국을 가져오면서 오랜만에 웃음꽃이 폈다.
내고장사랑운동본부는 지난달 대구 서구청의 추천을 받아 생계가 어려운 김 옹 조손가정을 '설 맞이 사랑나눔' 대상자로 선정, 지원키로 했다. 김 옹은 "올 설날 뜻밖의 선물을 받아 얼떨떨하다"며 주름살을 활짝 폈다.
대구=글·사진 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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