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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말과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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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말과 말씀

입력
2010.02.1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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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우체국 집배원들이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선물을 전하는 행사를 얼마 전 TV에서 보았다. 경북지방의 가난한 동네에서 외롭게 살던 노인들이 산타클로스를 맞는 어린이들처럼 기뻐하며 선물 보따리를 풀고 있었다.

"앞으로 자주 찾아 뵙고 친할머니처럼 모시겠습니다." 라고 집배원이 말하자 한 할머니가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구, 별 말씀 다 한다. 한 번도 고마운데."

"아이구, 별 말씀 다 한다"

그의 말은 참 듣기 좋았다.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할머니는 판자집 문 앞에서 선물을 든 채 웃고 있었다. 손주 나이의 집배원에게 "아이구, 별 소리 다하네" 라고 말하는 대신 "별 말씀 다한다" 고 말하는 표현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법정에서 젊은 판사가 노년의 소송당사자에게 "버릇없다."고 호통쳤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우리는 참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69세의 원고가 상대방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려고 하자 39세의 판사는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 나오느냐. 할 말 있으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어서 하라"고 질책했고, 자신의 행위가 문제가 되자 '법정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소송인의 진정을 받은 국가인권위원회는 "통상 버릇없다는 표현은 어른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나무라는 말인데 법관의 법정용어로 적합하다고 할 수 없다. 또 판사의 법정지휘권도 공무원에게 주어진 권한인 이상 헌법이 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밝히고, 해당지법원장에게 그 판사를 주의 조치하라고 권고했다.

젊은 세대의 버릇없음을 개탄해 온 사람들에게도 이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법관들이 권위주의에 빠진 나머지 감히 이런 말을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한탄과 함께 젊은 엘리트들이 우리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색다른 지적까지 나왔다. 법정질서를 안 지키는 사람에게는 나이를 불문하고 버릇없다는 질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말을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상당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검사들 중에도 막말과 폭력적인 언행으로 모욕감과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 나왔다. 교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집안 강도론' 으로 맞받아치는 해프닝이 벌어져 막말소동에 휩쓸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9일 충청북도 업무보고 자리에서 "세계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친 후 다시 싸운다"고 말했는데, 다음 날 박 의원은 "맞는 얘기지만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일 잘하는 사람을 밀어주겠다"는 대통령의 말에 대해서도 "일 잘하는 사람은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청와대는 '강도론'은 화합을 강조하기 위해 대통령이 전에도 여러 번 했던 말이고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박 의원의 사과를 요구했다. 박 의원 측은 "청와대가 박 의원을 겨냥한 말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는데, 박 의원도 이 대통령을 겨냥한 말이 아니었다"면서 사과 요구를 거부했다.

세종시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여권 내 갈등이 '집안 강도론'으로 번져 대통령을 강도에 비유했다는 시비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이번 경우에는 박 의원이 실수를 했다. 그는 대통령의 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반응했으며, '집안 강도론' 은 설득력이 없고, 대통령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난다.

공직자의 말은 '말씀'이어야

지금까지 박 의원은 무례하거나 막말을 하는 정치인이 아니었는데, 세종시 문제에서는 그런 이미지가 많이 깨지고 있다. 전례 없이 즉각적으로 말을 받아 치다 보니 적절치 못한 비유나 답변이 나오기도 한다.

공직자의 말은 어떤 경우든 국민을 상대로 하는 '말씀'이어야 한다. 사리에 맞아야 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공직자들의 말이 국민에게 모멸감을 준다면 그것은 공직의 위기다. 독거할머니의 말솜씨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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