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 중산동 메아리학교 뒤편 삼태봉을 오를라치면 초입의 산불 감시초소에서 한 노신사의 이런 권유를 듣게 된다. "라이터와 담배는 여기 맡겨 놓으시고 대신 이 시집 한 권 가져가서 읽어 보세요."
조남훈(68) 시인이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그는 196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잉여촌' 동인으로 활동하며 <미시령을 넘으며> <자정의 불빛> 등 시집을 냈고 지난 연말엔 제4회 창릉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부터 자신의 동네 뒷산을 지키고 있다. 자정의> 미시령을>
매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산불감시 초소에서 일하고 화요일과 눈, 비가 오는 날은 쉰다. 그러니 그의 현직은 산불감시원 시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 자연을 벗삼아 둘러보고 산을 소재로 시를 쓰고 싶었는데 마침 산불감시원 자리가 났어요." 그는 "좋은 글감을 얻고 일도 할 수 있어 내겐 엄청난 행운"인 셈이라고 말했다.
조 시인은 이곳에 근무하면서 지금까지 약 60여 편의 시를 썼다. 산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풀잎, 산길을 지나는 예사로운 노인의 움직임도 그의 감성에 걸러지면 시가 된다. 조 시인은 "내용은 모두 이 산자락에서 발견한 자연의 소중함, 사람들과 자연의 조화에 대한 것들입니다. 산불 감시원으로서 하루하루 제 일기를 써내려 가는 느낌으로 기록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등산객을 상대로 시집 한 권씩을 나눠준다. 산 정상에 올라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으로 즐거움을 얻지 말고 시 한 편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거두라는 의미에서다. 라이터 등 화기를 회수하면서 시집을 주고는 하산 길에 교환하도록 하는 것이다. 야생화 채취 금지 등을 당부하기도 한다.
그는 "제가 이곳에 근무하는 이유는 산불방지를 위한 감시와 예방이지만 그 못지않게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로 보람을 삼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8년 한화석유화학 교육훈련원 원장 겸 이사직 끝으로 26년 직장을 그만둔 뒤 2003년 북구 중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면서 경비실 옆방에 아파트 초등학생들에게 글짓기와 한자를 가르치는 글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학강연 강사로 나설 계획도 있고, 올 가을쯤 새 시집도 상재할 예정이다.
조 시인은 "나이 들어서도 세상에 기여할 수 있어 너무 즐겁습니다. 건강과 환경이 허락하는 한 자연, 이웃과의 소통을 확대해나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울산=목상균 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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