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또 다퉜다.
아이가 생긴 뒤 우리 부부는 부쩍 말다툼이 잦아졌다. 말다툼 시동을 거는 건 대부분 나다. 앞뒤 정황은 언제나 비슷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랴부랴 쌀부터 씻는다. 평일에 직장에 나가니 주말엔 냉장고가 텅 비기 일쑤. 없는 재료로 아이가 먹을 만한 국과 반찬을 하려니 갑갑하다.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깬 아이가 안아달라며 보챈다. 아이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이불 속에서 꼼짝 않는 남편을 흔들어 깨운다. 상 차리는 동안 아이 좀 봐달라고 '부탁'을 해야 못이기는 척 일어난다.
오후가 되면 아이는 책 보자, 글자놀이 하자, 놀이터 가자며 난리다. TV 리모컨을 손에 쥔 남편의 눈이 스르르 감기려는 찰나. 드디어 내가 폭발한다.
무슨 아빠가 주말에 잠만 자냐고, 아이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냐고, 나도 좀 쉬자고. 그 레퍼토리 지겨울 만도 하건만, 남편의 반응은 초지일관이다. 피곤하다며 한숨 푹 잔 뒤 "너는 참 잠이 없다"고 할 땐 말문이 막힌다.
남편에게 화가 난 건 아이보다 자신의 피곤함부터 챙기는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또 오죽 피곤하면 그랬을까 하며 은근히 미안해진다. 그리곤 모성애와 부성애에 대해 나름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고민하게 된다.
다툼이 시작되는 근원은 아빠가 왜 아이를 엄마처럼 세심하게 챙겨주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모성애와 부성애가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동물 세계에서도 아빠와 엄마가 새끼를 사랑하는 방식은 다르다. 휘파람새 수컷은 포식자가 나타나면 둥지에서 나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노래를 한다. 암컷은 둥지에서 새끼를 보호하고 있는데 말이다.
겉으로 보면 가족을 나 몰라라 하며 노는 것 같지만 사실 수컷의 행동은 포식자를 자신에게로 유인하기 위함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가족을 지키는 것이다.
뉴질랜드에 사는 새 키위 수컷은 암컷이 알을 낳고 먹이를 찾으러 나가 있는 동안 직접 알을 품는다. 아내의 빈 자리를 조용히 채워주는 이 행동이 바로 키위가 부성애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부성애는 평균적으로 모성애에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렇게 일반화하기엔 휘파람새와 키위의 부성애가 안타깝다.
동물을 연구하는 한 교수가 "모성애가 본능적이라면 부성애는 후천적"이라고 했던 표현에 더 눈길이 간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아이가 생긴 뒤 한 번도 자신만을 위한 쇼핑을 하지 않았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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