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통신용 반도체 기업 퀄컴은 국내에서 미운 털이 박힌 대표적 외국 기업이다.
퀄컴은 국내 대부분의 휴대폰에 들어가는 통신용 반도체인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칩을 만들어 1995년 이후 4조원이 넘는 기술 사용료(로열티)를 가져갔다. 반면 한국을 위해 한 일은 별로 없다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해 불공정거래를 한 혐의로 퀄컴에 사상 최대인 2,600억원의 과징금까지 부과했다. 그만큼 퀄컴코리아를 맡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테다.
3성 장군 출신의 차영구(63) 퀄컴코리아 사장은 지난해 6월 그 길을 선택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차 사장의 속내와 퀄컴코리아의 미래를 들어봤다.
운명을 바꾼 전화 한 통
차 사장이 기업체로 간 것은 전화 한 통 때문이다. 2004년 4월, 국방부 정책실장에서 물러나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그는 일면식도 없던 기업인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박병엽입니다." 팬택계열 박 부회장이었다. 미국 사업을 확대하고 싶었던 팬택은 미국 국제전략연구소와 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 객원 연구원,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센터 소장과 국방부 대변인을 거쳐 정책실장을 지낸 차 사장이 필요했다."비 전문가의 시각으로 업체를 진단해달라"는 것이 박 부회장 요청이었다.
2005년 팬택 상임 고문을 맡은 차 사장은 국방부 정책을 세우듯 회사를 진단했고, 전세계 업체들과 기술 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그때 퀄컴과 로열티 계약을 진행하며 첫 인연을 맺었다.
퀄컴과 본격 만남은 팬택을 그만두고 2008년 한미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주한 미군들을 위한 음악회를 기획해 퀄컴에 후원을 부탁했다. 이때 폴 제이콥스 퀄컴 회장이 차 사장의 설득력과 업무 추진력을 눈여겨봤고, 퀄컴코리아 사장을 제의했다.
"고민됩디다."가장 큰 고민은 부정적 이미지였다. "국가를 위해 30년을 넘게 일했는데, 이제는 반대편에서 미국 기업을 위해 일해야 하니 돈에 팔려가는 것으로 보일까 걱정했죠."그런데 퀄컴이란 회사를 연구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퀄컴은 대한민국 국방 예산의 두 배인 연간 23억달러를 연구개발에 씁니다. 그렇게 연구한 기술이 국내 통신서비스를 발전시킨 바탕이 됐죠."여기에 "이제는 글로벌 기업 시대"라는 생각이 이직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삼성이나 퀄컴이나 특정 국가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삼성은 환영받고 퀄컴이 그렇지 못한 것은 이미지 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꿔보자는 생각에 차 사장은 지난해 6월 퀄컴코리아 사장 겸 미국 본사 수석 부사장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후 7월에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를 앞두고 최종 의견 청취를 한 것이 그의 첫 업무였다.
"30년간 정부에 몸담았으니 공정위 사람들과 생각이 같았죠. 그런데 제 신분은 외국 기업체 직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양 쪽의 입장을 냉정하게 따져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보였다. "퀄컴 제품을 많이 구매한 국내 기업들에게 가격을 할인해 준 상행위를 문제로 본 공정위 시각은 국내 기업들이 아닌 퀄컴에 맞서는 또 다른 외국 기업을 편드는 것입니다. 강자끼리 싸움에서 다른 강자를 지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행위입니다." 결국 퀄컴은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
R&D센터 유치에 사장 자리를 걸다
이후 차 사장의 생활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취임 5일 만에 본사 경영진과 논쟁을 벌였다.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지난해 6월 미국에 일주일간 머물며 이미지 제고를 위해 한국에 투자할 것을 계속 종용했습니다. 입사 한 달도 안된 신참이 투자를 강력 주장하니 다들 이상하게 봤죠."
그러던 중 중국에 이어 두 번째 해외 연구개발(R&D) 센터를 다른 나라에 세우기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차 사장은 이를 논쟁 끝에 한국으로 바꿨다."사장 자리를 걸었습니다.
한국과 퀄컴의 관계를 생각하면 두 번째 R&D센터를 다른 나라에 세운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죠."그렇게 해서 퀄컴은 이달 초 한국에 R&D센터 설립을 발표했다. 또 국내 벤처기업 펄서스 테크놀로지에 4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차 사장이 앞으로 퀄컴에 기대하는 것은 한 가지, "한국 사회에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국내 기업들과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해 온 만큼 이제는 그 작업을 사회와 하겠습니다. 가장 모범적인 외국 기업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재임 기간 중 최우선 목표입니다."
▦차영구 퀄컴코리아 사장 약력
1947년생
1970년 육사 26기 임관
1979년 육사 조교수
1994?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센터 소장
1999년 국방부 대변인
2001년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2004년 국방부 정책실장, 육군 중장 예편
2006년 팬택 상임고문
2008년 한미협회 사무총장
2009년 6월 퀄컴코리아 사장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사진=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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