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면 벚나무들이
이 땅의 실업률을 잠시
낮추어줍니다
꽃에도 생계형으로 피는
꽃이 있어서
배곯는 소리를 잊지 못해 피어나는
꽃들이 있어서
겨우내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벚나무 아래 노점을 차렸습니다
솜사탕 번데기 뻥튀기
벼라별 것들을 트럭에 다 옮겨싣고
여의도광장까지 하얗게 치밀어오르는 꽃들,
보다 보다 못해 벚나무들이 나선 것입니다
벚나무들이 전국 체인망을 가동시킨 것입니다
● 어느 해 봄인가, 인사동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지요. 무슨 행사의 뒤풀이 자리였어요. 다들 친한 사람들이라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술을 마시노라니 몇 년째 그렇게 앉아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더군요.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술집에서 빠져나왔어요. 곧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여의도로 갔지요. 낮에 라디오에서 윤중로의 벚꽃이 절정에 달했다는 뉴스를 들었거든요.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창문 밖으로 내다봤더니 강변도로가 환하더군요. 마침내 그 길 아래에 서니 머리 끝까지 다 환해지더군요. 생각해보면 벚나무들의 전국 체인망이 실업률만 낮춘 건 아니에요. 전력소비량도 낮춘 게 분명해요. 아무리 어두운 길이라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우린 환해졌으니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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