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로 비극적 생을 마감한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뮤즈들이 9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회의실에 나란히 앉았다. '권진규'전의 부대 행사로 열린 '권진규와 모델'이라는 제목의 좌담회 자리였다.
교과서에 실린 권진규의 대표작 '지원의 얼굴'의 모델인 장지원(64)씨, 그리고 권진규가 남긴 유서의 수신인 중 한 명이었던 김정제(59)씨. 두 사람은 각각 홍익대 서양화과, 수도여자사범대 응용미술과 재학 시절에 강사 권진규의 가르침을 받았다. 권진규는 모델을 알아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 평소 깊은 교감을 나눈 이들을 모델로 택했다.
1965년 권진규와 인연을 맺은 장씨는 고인에 대해 "늘 조용하고 고상한 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은 고독에 빠지신 것 같다"고 말했다. "첫 수업 때 천장을 바라보시는 눈빛을 보고 참 특별한 분이라고 생각했죠.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며 가까워진 뒤 음악감상실, 작업장 등으로 저를 데리고 다니셨어요. 어느날 '지원아, 내 모델 좀 해줄래' 하시더군요."
고인의 자살 전날을 함께했던 김씨는 "자신의 작품을 너무 사랑한 분이었기에 고독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음악을 좋아해서 수화기 너머로 음악을 들려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날 김씨는 1972년 권진규가 만들어준 자신의 데드마스크와 그에게서 받은 편지,'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고 적힌 권진규의 유서를 갖고 왔다. "작품을 위해 목숨을 끊겠다는 이야기를 가끔 하셨는데 철이 없을 때라 장난으로만 생각했어요. 작업실의 쇠사슬을 가리키며 저기에 목을 매겠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이날 좌담회에는 말년의 권진규와 가깝게 지냈던 안동림(78) 전 청주대 교수, 권진규의 조수였던 원수영(64)씨도 참석해 고인과 그의 작품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권진규의 작품 140여점을 모은 '권진규'전은 28일까지 계속된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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