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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기자 아이티 구호 현장을 가다/ 천대신 종이 깐 침상서 부상자 치료 악전고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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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기자 아이티 구호 현장을 가다/ 천대신 종이 깐 침상서 부상자 치료 악전고투

입력
2010.02.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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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 기둥으로 단단히 자리잡은 임시병동들이 잔디밭에 가지런하다. 천장엔 하얀 레이스가 달려있고, 침대 위엔 소독이 된 깨끗한 천이 깔려있다.

환자들은 평온해 보였다. 엑스레이 등 각종 의료장비를 갖춘 수술천막도 있다. 30명은 족히 들어갈만한 식당용 막사엔 커피 생수 음료수 과자 등이 놓여있다. 의료진은 느긋해 보였다. 출입을 통제하는 경비원이 자못 준엄했지만.

#2. 침상엔 소독이 된 천이 없어 종이를 깔았다. 피에 흥건히 젖은 종이는 이내 찢어졌다. 환자 대부분은 사나흘 입원하고 있어야 하지만 병실용 천막도 수술장비도 없다.

환자들은 헛헛하게 돌아갔다. 의료진의 숙소는 차로 30분 거리나 떨어져있다. 흙 바닥이라 조금만 방심해도 식탁과 약제에 새카만 먼지가 달라붙는다. 점심은 버스에서 해결한다. 장총을 든 경비원은 밤이 되면 맨 땅 위에 누워 잔다. 몇 발의 총성도 멀리서 들렸다.

아이티를 찾은 해외 의료지원단의 사뭇 다른 풍경이다. 첫 번째는 독일이고 다음이 우리나라 의료지원단이다. 한국의 의료진은 부끄러웠다.

비슷한 소명의식과 의술을 품고 날아왔건만 현지에서의 활동은 확연히 갈렸다. 설마 우리만 그럴까 싶어 8일(한국시간 9일) 다른 나라 의료단도 둘러봤다.

노르웨이 팀도 엑스레이 장비와 철제막사를 갖췄다. 막사엔 환자 수십 명이 입원해 있었다. 한국 의료진은 할 수 없는 골절수술도 가능했다.

미국 의료진은 자동차까지 빌려 병원에 올 수 없는 환자를 위한 이동 진료를 하고 있다. 현지인 트럭의 짐칸을 얻어 타는 우리 의료진에겐 언감생심이다.

두 나라를 비롯해 7개국은 아이티 최대병원인 제너럴병원에 둥지를 틀었다. 입원환자만 160명이다. 한국은 퇴짜를 맞았다. 간단한 의료장비도 없고, 텐트는 철제가 아닌 공기주입식이었기 때문이다. 공기주입식 텐트는 강풍이 불면 무너져버린다. 실제 그랬다.

준비가 소홀했던 탓일까. 김성근(가톨릭중앙의료원) 단장은 "병상용 철제 텐트를 가져오려 했으나 항공사에서 무게가 너무 나간다(개당 400㎏남짓)고 거절해 공기주입식(개당 100㎏)도 겨우 사정해 3개만 가져왔다"고 했다.

500㎏이 넘는 엑스레이 장비를 가져오는 건 아예 상상도 못했다. 그뿐이랴. 철제박스에 약품을 실어온 독일과 달리 우리는 종이상자에 약품을 담아왔다. 약이 새나오고, 약병이 깨진 것도 있었다.

다른 나라 의료진에게 "준비를 어떻게 했냐"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해당 정부가 군용기를 동원해 의료장비와 약품을 모두 날라줬다는 답이 돌아왔다.

특히 이번에 200억원을 지원한 독일 정부는 타국의 긴급 재난에 대비해 관련 장비 등을 미리 사 공항에 보관한다고 했다. 우리보다 빨리, 완벽하게 준비된 의료진을 파견한 이유다.

그러나 한국 의료진은 힘든 상황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냈다. 2일부터 7일간 730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박성우(의정부성모병원) 간호사는 "지진이 난 지 3주 만에 병원을 찾아 썩어가던 소년의 오른쪽 허벅지를 치료했을 때가 뿌듯했다"며 "조금만 늦었으면 절단했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 의료진 1진(15명)은 9일 새벽 아이티를 떠났다. 2진(인하대병원 20명)은 이날 오전 아이티에 도착해 2주간 진료를 이어간다.

김 단장은 "우리의 해외응급구호 시스템은 열악하지만 인술(仁術)의 의지는 뒤지지 않는 만큼 두 달간의 진료 릴레이를 예정대로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정부가 최소한 필요장비와 물자를 수송해주는 편의를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간단한 의료장비와 철제 텐트도 없이 악전고투할 의료지원단 2진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포르토프랭스(아이티)=글ㆍ사진 김현우 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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