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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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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입력
2010.02.0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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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한 계절에 한 번씩 두통이 오고 두 계절에 한 번씩 이를 뽑는 것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를 사랑한 개가 있고 나를 몰라보는 개가 있어

하얗게 비듬을 떨어뜨리며 먼저 죽어가는 개를 위해

뜨거운 수프를 끓이기, 안녕 겨울

푸른 별들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로 달려오고

그 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가방을 잃어버렸지

가방아 내 가방아 낡은 침대 옆에 책상 밑에

쭈글쭈글한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날 가방들

어깨가 기울어지도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아직 건너보지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보지 못한 돌멩이들

아직도 취해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어

그러나 내 인생의 1부는 끝났다 나는 2부의 시작이 마음에 들어

많은 가게를 드나들어야지 새로 태어난 손금들을 따라가야지

좀더 근엄하게 내 인생의 2부를 알리고 싶어

내가 마음에 들고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인생!

계절은 겨울부터 시작되고 내 마음에 드는 인생을

일월부터 다시 계획해야지 바구니와 빵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접시 위의 물은 마를 줄 모르네

물고기들과 꼬리를 맞대고 노란 별들의 세계로 가서

물고기 나무를 심어야겠다

3부의 수프는 식었고 당신의 입술로 흘러드는 포도주도

사실이 아니야 그렇지만 인생의 3부에서 다시 말할래

나는 내 인생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아들도 딸도 가짜지만 내 말은 거짓이 아니야

튼튼한 꼬리를 가지고 도끼처럼 나무를 오르는 물고기들

주렁주렁 물고기가 열리는 나무 아래서

내 인생의 1부와 2부를 깨닫고

3부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기도하는 내 인생!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싹둑 잘려나가고

훨씬 밝아진 인생의 3부를 보고 있어

나는 드디어 꼬리 치며 웃기 시작했다

● 겨울이 되어서 좋았던 건 뜨거운 차를 마실 일이 많아졌다는 사실이죠. 겨울이 시작될 무렵,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머나먼 미국 오레곤 포틀랜드에서 이런저런 차를 가득 담은 상자가 배달됐어요. 나름 나 자신에게 건네는 월동장구라고나 할까요. 겨울에는 뜨거운 물로 몸을 좀 덥혀줄 필요가 있으니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곧장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이죠. 그리고 컵에 부은 뒤, 티백을 넣지요. 몇 분이 남아요. 4분이나 5분 정도. 차가 우러나기까지는. 다른 일을 하기에는 좀 애매한 자투리 같은 시간이에요. 그래서 그냥 서 있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좀 이상하니까 주로 창밖을 바라봤어요. 해는 점점 늦게 뜨다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빨리 뜨기 시작하더군요. 겨울이 그렇게 지나갔네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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