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이란혁명 31년주년을 앞두고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둘러싼 이란과 국제사회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란은 9일부터 보유 우라늄을 20% 수준까지 고농축하는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내년 3월부터는 우라늄농축 공장 10곳을 신축한다고 선언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8일 공군 장교들과의 모임에서 "혁명기념일인 11일 오만한 서방 권력은 간담이 서늘해질 '펀치'를 맞게 될 것"이라고 밝혀 중대발표를 예고했다.
또 이란은 이날 우라늄 고농축을 시작하겠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공식 통보했다. 알리 아스가르 솔타니에 IAEA 주재 이란대사는 오스트리아 빈의 IAEA 본부에서 현재 비축중인 연구용 원자로 연료가 연내에 다 소비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20% 정도 수준의 우라늄을 농축, 테헤란의 연구용 원자로 연료로만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20% 수준의 우라늄 농축은 무기급 우라늄 생산에 거의 도달하는 것"이라며 이란의 주장과는 달리 이번 농축이 핵무기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7일 국영TV에서 "우리는 협상 상대방 6개국에 2∼3개월의 시간을 충분히 줬다"면서 "20% 농도의 우라늄을 생산토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 영국 등 서방 강대국들이 제재 강화를 언급하며 강력 대응에 나선 것은 물론이다. 이들은 곧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마련하겠다고 경고했다.
핵개발과 함께 이란은 미사일, 로켓 등 군비 확충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란은 지난해 12월 사거리 2,000㎞에 이르는 장거리 미사일 '세질 2호'를 시험 발사한 데 이어, 지난 3일엔 위성탑재 로켓 실험을 실시해 서방국을 긴장시켰다. 6일에는 곧바로 후속 실험용 로켓 생산을 공식 개시했다고 밝혔다.
또 신형 미사일 생산공장 2곳에서 헬리콥터 요격용 지대공 미사일인 '카엠(떠오름)'과 지대지 미사일 '투판(폭풍) 5호'가 생산된다는 것이 국영TV를 통해 보도됐다. 이란은 나아가 7일에는 공군이 레이더망을 피해갈 수 있는 전투기의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밝혀 서방 국가들을 자극했다. AFP통신은 8일 "이들 무기가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공습 가능성이 있는 이란 핵시설 근처에 배치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의 이 같은 행보는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을 비롯한 군비확충을 전략적 축으로 삼아 자국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강경한 제재 추진에 맞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 당국이 이날 정국 불안을 부추기고 미국에 정보를 누설했다는 혐의로 미국이 자금을 대는 페르시아어 라디오 방송사 관련자 7명을 체포한 것에서도 긴장을 높이려는 의도가 읽힌다. 제재를 가하려는 국제사회를 교란시키면서 핵개발과 군비확충은 중단하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 이란 혁명 31주년… 또다른 독재에 성난 민심
1979년 이란 민중이 친미 정권인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최고지도자로 옹립, 이슬람원리에 충실한 이슬람공화국을 세웠던 '이란 이슬람 혁명(이하 이란혁명)'이 11일로 31주년을 맞는다. 반외세 반독재 항거의 결실로 이란에 신권정치를 불러온 혁명. 하지만 그 기념일을 맞는 테헤란의 분위기는 전쟁 전야처럼 암울하기만 하다.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재선되는 과정에서 일었던 부정선거 의혹과 이에 따른 개혁파의 반정부 시위 정국이 해를 넘겨 지금도 이란을 혼돈 속에 붙잡아 두고 있다.
외신들은 혁명기념 행사가 한창일 11일을 기점으로 개혁파와 정부의 무력 갈등이 다시 불붙을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는 체포한 시위 관련자를 하나 둘 처형하면서 탄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혁파는 이에 맞서 "진정한 이슬람혁명은 이제 시작"이라며 31년 전 위력을 보였던 민중의 힘에 기대어 '제2의 혁명'을 일으킬 기세다. 정부는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고 하고 있고 개혁파는 "현 정부는 독재정권"이라며 민중봉기를 추진하고 있다.
이란혁명 31주년 기념행사는 '여명의 10일'로 불리는 2월1일부터 10일까지 지속되며 11일 오전 9시 33분(호메이니가 31년 전 망명을 마치고 테헤란 공항에 도착한 시간) 관공서, 학교, 사원의 종들이 일제히 울리면서 절정에 달한다. 올해는 이 행사들이 순조롭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와 메흐디 카루비 전 의회 의장이 이끄는 이른바 녹색(개혁파의 상징)운동 세력은 '목요일(11일) 테헤란 집결'을 동조자들에게 통보했다. 무사비 전 총리는 지난 달 말 시위 참가자의 처형이후 "개혁파의 힘을 보여주자"며 대정부 선전포고를 해놓은 상태다. 외신들은 11일 테헤란 시위에 수만명이 참여, 경찰과의 충돌로 기념행사를 아수라장으로 만들 것으로 예상한다.
이란 정부는 2일 "9명의 시위 관련자를 이른 시일 안에 처형하겠다"고 밝히는 등 철권통치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11일 예상되는 대규모 시위의 무력화에도 착수했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 "당국이 11일 시위를 계기로 반정부 운동을 뿌리 뽑기 위해 이미 개혁파 체포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NYT와 CNN은 이란 당국이 곧 무사비와 카루비 체포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혁명기념일 이후 정부와 개혁파의 대립 국면은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시위를 유혈사태로 끌어간 현 정부에 민심은 끊임없이 저항할 것이고, 정부는 공포정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들은 "독재 항거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로 대표되는 신정(神政)체제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고 전한다.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도에서 "최고지도자가 곤경에 처했다"며 31년이 지난 지금 이란 혁명이 계속되고 있음에 주목했다.
양홍주 기자
■ P5+1 국가들 '동상이몽'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7일 “서방과의 협상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돌변해 “우라늄 자체 농축”을 선언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이란에 대한 강도 높은 제제 카드를 빼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5개국) 및 과거 이란에 대한 제재에 동참했던 독일 등 주요 6개국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가장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이날 “국제사회가 단합해 이란에 중대한 압력을 행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對)이란 추가 제재 결의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일각에선 이란에 대한 선제 타격론까지 거론된다. 뮌헨 회의에 참석중인 조 리버먼 미 상원의원은 “외교적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추가로 가하는 가, 군사적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 최고사령관들이 이미 이란 공격을 검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방 동맹국들도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영국 외무부는 ‘명백하고도 심각한 관심 사항’이라며 이란 사태에 우려를 표했고, 독일 칼 테오도르 추 구텐베르크 국방장관도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고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중국이 이미 이달 초 미국 영국 프랑스가 제시한 새로운 이란 제재 방안에 반대 의사를 보인 터라 빠른 시간 내에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조치가 가시화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외교협상을 통해 차분하게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뮌헨 국제안보회의에 사상 처음으로 참가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이란과 협상을 할 소지가 여전히 남아있다”며 “장기적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석유수입의 15%를 이란에 의존하고 있어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동참에 소극적이다. 이란에 핵 개발 관련 물질을 제공해온 러시아도 유보적 입장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란에 대한 제재 보다는 국제사회가 이란의 연구용 원자로에 농축 우라늄을 제공하는 방안에 더 관심을 둘 것을 제안했다.
채지은 기자 mailto: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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