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제목들 똑 부러진다. 구구절절 수식어가 붙고 동사형으로 끝나던 제목은 자취를 감추고 있는 반면, 명사 한둘로 끝나는 단순명료한 제목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바야흐로 ‘굵고 짧은’ 제목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2~3년 전만 해도 한국영화 제목은 10자를 넘기기 일쑤였다. 2004년엔 제목이 26자에 달하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영화가 등장, 화제를 모았다. 명사형 제목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조금은 긴 동사형 제목으로 개명하기까지 했다. ‘미열’은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보고 싶은 얼굴’은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이름을 바꿔 호객을 했다.
요즘은 정반대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대부분의 제목은 4자 안팎이다. ‘해운대’ ‘국가대표’ ‘전우치’ ‘의형제’ 등이 짧은 제목의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작 진행 중인 작품들의 제목도 굵고 짧기는 마찬가지다. 강우석 감독의 ‘이끼’, 나홍진 감독의 ‘황해’, 송해성 감독의 ‘무적자’, 이현승 감독의 ‘밤안개’, 원빈 주연의 ‘아.저.씨’,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 설경구 주연의 ‘해결사’, 하정우 주연의 ‘의뢰인’ 등 간결한 제목의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아열대’라는 가제로 출발해 최근 ‘악마를 보았다’로 이름을 바꾼 김지운 감독의 신작 정도가 예외에 해당한다.
제목이 짧아지는 이유는 최근 스릴러와 누아르 등 남성영화 제작 붐과 무관치 않다.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줘야 하는 장르적 속성이 작명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2008년 스릴러 ‘추격자’와 ‘테이큰’이 기대 밖의 흥행 성공을 거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영화 홍보사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실장은 “긴 제목은 여성적인 감성으로 다가가는 영화들에 잘 어울린다”며 “쏟아지는 영화들 속에서 대중들에게 쉽게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짧은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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