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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기술 발달과 건강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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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기술 발달과 건강 르네상스

입력
2010.02.0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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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경기도는 대중교통체계를 연결하는 교통카드만 있으면 어디든 쉽게 다닐 수 있어 아주 편리하다. 지하철도 에스컬레이터를 많이 만들어 계단을 걷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장애인, 노인, 심장이나 폐가 나쁜 만성질환자들에는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그러나 기술적 발달은 우리의 체력을 그만큼 떨어뜨리고 비만은 더 늘어나 스포츠센터를 찾거나 운동을 해야만 한다. 계단을 다 없애고 에스컬레이터만 설치한 곳이 점점 늘어나 계단 걷기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마저 빼앗아 버린 곳이 많다.

전화를 걸려면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해내려 애쓰지만 결국 휴대폰에서 이름과 번호을 찾아 통화단추를 누를 수밖에 없다. 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해 두고 굳이 외우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건망증이 심해진 때문인지 휴대폰에 의존하다 보니 생긴 일인지 의사인 나도 혼란스럽다. 고작 기억하는 번호는 옛날에 외운 것들이다. 최근 번호들은 가물가물하거나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출근하는 날은 당황스럽다 못해 한심하기까지 하다.

여행을 하거나 약속 장소를 찾아 갈 때 지도가 없으면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보조석에 앉을 경우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운전자에게 길을 안내하거나 전화로 혹은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 보는 것이 일이었다. '이 길이 맞다', '저 길이 맞다', 가까운 사이라도 옥신각신한 경험을 해 보았으리라. 그러나 요즘 네비게이션이 생겨서 싸울 일이 없다. 운전할 때 네비게이션을 보거나 안내 음성에 더 집중하다 보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 여행이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도 있지만 풍경과 자연을 느끼며 감성을 발달시키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네비게이션에 의존하다 보면 그럴 기회를 잃어버린다. 그 뿐인가. 다음에 찾아가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네비게이션을 이용해야 한다. '공간인지 기능이 떨어진 것은 아닐까', 마치 바보가 된 듯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궁금한 것이 있으면 검색창에 단어나 문장을 치기만하면 많은, 그리고 가장 가까운 정보를 찾아 준다. 인터넷은 정보의 보고이다. 조그만 기억장치에 수많은 정보를 담아 다닐 수 있어서 두꺼운 서류나 책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사전이나 책을 읽고 찾아 헤매거나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머릿속은 점점 비워지는 느낌이다.

약물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약을 복용하지 않았을 때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네비게이션, 휴대폰, 인터넷이 가까이 없으면 영락없이 안절부절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옛날에는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 탓했지만 지금은 우리를 바보로 만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가상의 세상에서 아바타가 우리를 대신해서 일하고 전투하고 날아다니며 느끼고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사랑하며 실존을 상실해도 감탄하는 세상이다.

기술의 발달로 건강이 나아진 것 같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국민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위기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국민의 건강은 곧 국가와 사회의 경쟁력이다. 정부와 사회는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맡길 것이 아니다. 기술 발달에 가려져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어두운 면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국민의 건강을 보살펴 주는 이른바 '건강 르네상스'를 준비해야 한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책임연구원·가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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