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트 폭스 지음ㆍ권석하 옮김/ 학고재 발행ㆍ604쪽ㆍ2만5,000원
"두 영국인이 만나면 첫 대화는 날씨 이야기로 시작한다."
영어사전을 처음 만든 새뮤얼 존슨이 이 말을 한 지 20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영국에서는 이 명제가 유효하다. 왜 영국인은 유독 날씨에 집착하는 것일까?
<영국인 발견> 의 저자인 케이트 폭스는 "영국인에게 날씨 이야기는 '안면트기 대화(grooming talk)'일 뿐"이라고 말한다. 영국인>
영국인들은 '사교불편증' 환자라서 어색한 인사와 소개 때 날씨 이야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 그에 따르면 영국인들이 유머를 사랑하거나 중용을 지키는 것, 위선을 떠는 것 모두 사교불편증에 따른 하나의 반응일 뿐이다.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로빈 폭스의 딸로 역시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영국인다움(Englishness)'을 규명하기 위해 수많은 영국인들을 인터뷰하고, 스스로 실험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하루종일 일부러 사람들과 부딪치면서(이 실험을 위해 그는 술의 힘을 빌려야 했다) 몇 명이 사과를 하는지 조사했고, 눈총을 받으며 종일 새치기만 한 날도 있었다.
폭스는 이런 참여관찰법을 통해 얻은 결과를 이 책에서 설명한다. "영국인들은 하수구로 굴러 떨어지면서도 당신에게 사과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과, 부탁, 감사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거나 진실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기교와 위선이 들어있다"는 말처럼, 원주민이 까발리는 영국인의 실체가 흥미진진하다. 실험 뒷이야기와 구체적인 사례들이 저자의 '영국인다운' 유머와 적절히 섞여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 독자를 질리게도 만들 것 같지만 이 책은 딱딱한 사회과학서적은 절대 아니다. 다만 '까다롭고 예리한 일반인'을 위해 쓰였을 뿐. 실제 2004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30만권이나 팔렸다.
폭스의 결론은 사교불편증이 영국에 '신사'와 '훌리건'을 공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혹자는 기후나 역사, 지리적 결정론의 측면에서 영국인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의 원인을 찾지만 저자는 "나는 모르겠다"는 황당한 답변을 결론처럼 내놓는다.
다만 "영국인은 자폐증과 광장공포증, 사교장애 환자라는 건강 경고문을 발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자칭 '민족 정신과 의사'다운 말이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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