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조선인 140만 명이 귀국길에 올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90만 명은 1945년 8~11월에 몰렸다.
이처럼 미쓰비시 징용공을 포함한 강제동원 조선인들은 광복 직후 서둘러 귀국하려 했으나 당시 일본이 수송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아 대다수가 '똑딱선' 등 작고 낡은 배를 탔고, 기상 악화마저 겹쳐 해난 사고가 속출했다.
우키시마호(浮島丸)를 비롯, 조선인 귀환 해난사고로 확인된 것만 10여건에 달한다. 미쓰비시징용자들이 일본을 떠난 날인 1945년 9월17일 기타규슈(北九州) 와카마쓰(若松)를 떠난 귀국선도 태풍을 만나 조난돼 조선인 100여명이 희생됐다.
진상규명위는 태풍 등으로 변을 당한 조선인 시신들은 파도에 밀려 규슈지역 해안가와 이키섬, 쓰시마 지역에서까지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희생에는 일본 정부가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귀환수송선을 운항한 탓이 컸다. 실제 정원 800명인 운젠호는 2,000명 정원으로 급조해 대한해협을 월평균 9회씩 왕복 운항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 정부가 무리한 운항을 한 데는 해방과 함께 조국에 돌아가고자 하는 조선인들이 대거 몰린 측면도 있다. 1945년 12월 17, 18일 시모노세키(下關)항에서 배를 기다리던 조선인이 2만여 명에 달했다.
오일환 유해팀장은 "해방 직후 인구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피해규모는 알 수 없지만 많게는 수만 명이 귀환과정에 희생됐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당시 침몰선 7,000척에 관한 정보와 승선자 명단을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아 양국 공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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