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ㆍ이가람 옮김/이매진 발행ㆍ366쪽ㆍ1만7,000원
항공사 여승무원의 고백이다. 한 승객이 서비스가 불만스럽다고 그녀의 유니폼에 뜨거운 커피를 끼얹었다. 여승무원은 화를 낼 수 있었을까? 그녀는 승객의 행위가 엄연한 폭력이라고 생각했지만 회사로부터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다. "흥분하지 마라. 회사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으니 분노하면 안 된다.그럴 때 대범하게 넘기는 것도 일의 일부다."
분노할 만한 일에 화를 내거나 즐거운 일에 기쁨을 표시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직업은 그런 감정 표현을 엄격히 통제한다. 언제 기뻐하고 분노해야 하는가, 어떻게 어느 정도로 표현해야 하는가 등을 표준화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도록 강제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70)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감정노동> 에서 이 항공사 승무원처럼 자신의 기분을 억누르면서 일해야 하는 것을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는 용어로 처음 개념화했다. 1983년 이 책이 첫 발간된 후 감정노동자, 감정체계, 감정 프롤레타리아 등의 신조어가 잇따라 등장했고 미국사회학회는 감정사회학 분과를 만들었다. 감정노동>
감정노동이란 팔, 다리를 주로 사용하는 전통적 육체노동과는 다른 차원의 노동이다. 훅실드는 이 책에서 인간적 특성이나 개인의 자질로 여겨졌던 '감정'이 어떻게 상품화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바뀌었으며 시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감정을 상품으로 판다는 것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등의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늘 따뜻한 미소를 지어야 하는 항공사 승무원, 그와는 정반대로 빚 독촉을 하느라 늘 냉담해야만 하는 채권 추심원을 중심으로 감정노동의 여러 면모를 분석한다. 물론 그들만이 감정노동자는 아니다. 저자는 "우리 모두는 부분적으로 항공사 승무원"이라고 말한다. 상사가 '활기 넘치는 분'으로 보이도록 명랑한 사무실 분위기를 만드는 비서, 즐거운 식사 분위기를 유도하는 웨이트리스와 웨이터, 고객들이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야 하는 사회복지사, 잘 나가는 제품이라는 확신을 줘야 하는 영업사원, 사람들이 편안히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목사도 모두 감정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육체노동과 마찬가지로 감정노동에는 스트레스가 따른다. 책에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인식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업 전략이다. 그것은 앞만 보고 달리도록 말에 눈가리개를 씌우는 행위와 유사하다. 기업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기업의 목적에 맞게 바꾸도록 교묘한 전략을 구사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자아는 쉽게 무너진다. 한 항공사는 "언제나 웃어야 한다"는 주문에 반발하는 승무원들을 이렇게 교육한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화가 난 겁니다. 자신에 관한 생각을 버리세요!"
'소외'라는 마르크스의 개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쯤 되면 노동자의 감정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자신의 자아 중 어디까지가 자신의 것인지 알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사물보다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 늘면서 갈수록 감정노동이 증가하는 오늘날, 이 책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새삼 일깨운다. 저자는 묻는다. 당신의 웃음은, 당신의 분노는 과연 당신의 것인가? 책의 원제는 'The Managed Heart: Commercialization of Human Feeling'('조작된 마음: 인간 감정의 상업화'). 번역서는 2003년 출간된 개정판을 옮긴 것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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