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의 유지를 계승 발전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울먹였다. 아버지인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장에서 인사말을 하던 중 일어난 일이다.
삼성전자를 세계 최대 전자 업체로, 삼성을 한국 최고 기업집단으로 올려 놓은 그였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면 북받치는 감정을 어쩔 수 없었다.
이 전 회장은 5일 오후3시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감사의 말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그는 먼저 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선친이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점된 1910년 태어나 경제발전을 통한 조국 근대화에 평생을 바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문을 뗐다.
이 전 회장은 이어 "도도한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시련을 딛고 꿋꿋이 나아간 선친의 발걸음은 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준엄한 가르침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며 "선친은 국가의 중추가 되는 여러 산업들을 일궜을 뿐 아니라 우리의 얼을 빛낸 전통문화 창달에도 힘을 쏟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선친이 우리 사회가 기억하는 큰 이정표를 남기신 것은 오로지 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사회 각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전 회장은 "앞으로도 선친의 유지를 변함없이 지켜나갈 수 있도록 따뜻한 애정과 관심을 베풀어 주시길 부탁드린다"며 "가족 대표 이건희"라는 말로 인사말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이 전 회장은 이날 행사에 앞서 호암의 경영철학 중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며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화두도 던졌다. 또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 "참 어려운 질문"이라며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전부 투자하고, 전부 열심히 일해야 한다.
싸우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예전 전략기획실 같은 기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각 사의 전략기획실이 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경영 복귀에 대해선 "아직 빠르다"고 전제한 뒤 "회사가 약해지면 도와줘야죠"라고 덧붙였다.
이 전 회장은 행사가 끝난 뒤 초청인사들과 다과회를 가질 때도 누나인 이인희(호암의 장녀) 한솔 고문, 여동생인 이명희(호암의 5녀) 신세계 회장과 아버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다시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 행사장을 떠날 때도 오른편엔 부인 홍라희 여사, 왼편엔 이명희 회장과 손을 꼭 잡고 대기하고 있던 차까지 걸어가 이명희 회장을 옆자리에 앉게 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이날 기념식은 삼성 뿐 아니라 CJ, 한솔, 신세계 등 범(汎) 삼성가(家)의 유가족과 사장단, 정계ㆍ관계ㆍ재계ㆍ문화예술계 인사 등 500여명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사업보국, 인재제일, 문예지향, 백년일가, 미래경영 등 5개 소주제로 진행된 이날 행사의 기념사는 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이, 축사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맡았다.
이 이사장은 "인재제일과 사업보국을 축으로 한 호암의 경영 철학은 우리 사회의 기업경영 철학으로 영구한 생명을 지닐 것"이라고 말한 뒤 올해부터 호암상 각 부문의 상금을 3억원으로 인상키로 했다고 밝혔다.
박 명예회장은 "호암이 살아 계신다면 평소 인재제일과 미래경영을 강조하신 만큼 '문제는 21세기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들'이라고 하실 것"이라며 "도전과 창의, 근면과 성실의 인재들을 부단히 길러내는 것이 우리 기업과 사회의 나아갈 길"이라고 강조했다.
행사에는 호암의 손자ㆍ손녀인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 이재현 CJ 회장, 조동길 한솔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이부진 에버랜드ㆍ호텔신라 전무, 이서현 제일모직ㆍ제일기획 전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정계에선 정원식 이한동 이홍구 전 총리 등이 자리를 빛냈다.
재계에선 강신호 전 전경련 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장,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석채 KT 회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구학서 신세계 회장 등이, 금융계에서는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등이 모습을 보였다.
또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손병두 삼성장학재단 이사장, 황영기 차병원 부회장,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 이순동 삼성미소금융 이사장도 빠지지 않았다.
삼성 임원으론 이학수 고문,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이윤우 김순택 삼성전자 부회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부회장,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지성하 삼성물산 사장, 양인모 삼성엔지니어링 고문 등이 자리를 지켰다.
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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