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도요타의 대량 리콜 사태를 접한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은 의미 심장한 말을 던졌다.
"하이브리드 시장의 주도권은 경쟁업체(도요타)에 빼앗겼지만 전기차 시장 주도권은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것.
당시만해도 그의 발언은 가속 페달 문제로 인한 1,000만대 리콜 사태 때문에 도요타의 친환경차 개발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 정도로 해석됐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뒤 하이브리차의 대명사 격인 도요타의 프리우스에 대해 리콜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전망은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가 제동력 문제로 리콜 사태를 맞으면서 친환경차 주도권에 지각 변동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비교우위에 있던 하이브리드차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그 틈새를 전기차, 클린디젤 등이 파고 들어오는 형국이 되고 있다. 이는 각 글로벌 업체의 기술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향후 자동차 업계의 판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 동안 친환경차 개발은 사실상 '하이브리드' 기술을 앞세운 도요타의 독주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요타는 1980년대 대중차(코롤라, 캠리), 90년대 고급차(렉서스)의 성공에 이어 하이브리드차 기술로 무장한 프리우스를 미래 전략차종으로 육성해왔다.
프리우스는 97년 첫선을 보인 이후 지난해 말까지 170만대가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프리우스를 앞세운 도요타는 전세계 하이브리드차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도요타의 독주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프리우스를 팔면 팔수록 도요타의 손해가 커진다는 의혹도 제기해 왔다. 하이브리드차에 대해 1,000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한 도요타가 그동안 하이브리드차의 시장 규모를 키우기 위해 저가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간 공들인 도요타의 전략은 이번 리콜 사태로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전기차를 앞세운 업체의 공세가 예상된다. '볼트'를 앞세운 GM, 순수 전기차 양산단계에 들어선 르노닛산과 미쓰비시가 역전극을 노리고 있다. GM의 볼트는 충전 배터리와 내연기관을 함께 쓰는 전기차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플러그인 하이브리차로 분류된다. GM은 올해 1만대를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연간 6만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도 2012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라는 타이틀을 놓고 경쟁 중인 르노닛산의 리프, 미쓰비시의 아이미브도 친환경차 주도권을 하이브리드에서 전기차로 옮기겠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100% 순수 전기차로 르노닛산의 리프는 2012년께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고 미쓰비시도 2012년까지 일본에 충전소 1,000곳을 만들 예정이다.
하지만 프리우스 리콜 사태로 인한 실속은 클린디젤 개발에 앞선 폴크스바겐, BMW 등 유럽 업체의 몫이 될 가능성도 높다. 전기차 시대 개막에 앞서 충전소 등 인프라 개발이라는 큰 숙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클린디젤은 기존 자동차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이상 낮추면서 연비는 리터당 20㎞ 이상으로 높인 기술로, 이미 일부 차종에 적용되고 있다.
유럽 업체는 이같은 기술을 하이브리드에 접목, 디젤 하이브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적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는 5년 안에 리터당 33㎞를 주행하는 사실상의 하이브리드 디젤을 내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자동차 전문가는 "도요타의 첨단 이미지가 깨진 것은 사실이지만 하이브리드가 친환경차 개발 주도권을 내 줄 것인지는 속단하기 힘들다"면서도 "기술을 앞세운 미국, 일본 중심의 전기차와 자금력을 앞세운 유럽의 클린 디젤의 추격전이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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