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교육센터에 온 실습생들 "내가 회사대표" 경쟁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기차로 2시간 떨어진 중부 튀링겐 주 예나(JENA)의 직업 교육 센터(Jenaer Bildungs Zentrum). 센터에 들어서자 낯선 모습이 눈에 띄었다. 쇼트(SCHOTT), 칼 자이스(CARL ZEISS), 예놉틱(JENOPTIK). 세 회사의 이름이 센터 표지판에 나란히 적혀 있는 것. 센터 관계자는 "이 곳은 세 회사가 공동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물론 이들 회사 소속 실습생들이 교육 받고 실습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센터가 문을 연 건 1991년. 예나에 터전을 둔 칼 자이스와 쇼트는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별도 교육 센터를 운영하는 대신 공동으로 센터를 마련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역시 예나에 있는 광학회사 예놉틱이 동참했다.
어떻게 서로 다른 회사가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센터 운영을 총괄하는 로타르 프리벨씨는 "눈 앞의 회사 이익만 생각 한다면 자기 사람은 직접 키우는 게 맞을 지 모른다"면서도 "하지만 기술 발전이라는 큰 목적을 생각한다면 여러 회사가 모여 운영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 수준은 높아가고, 기능 인력들이 앞선 기술을 얼마나 빨리 알고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회사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판단에서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1대에 수 억 원짜리 비싼 장비를 확보하고 각 분야의 마이스터(명장), 박사급 인력 등 최고 수준의 강사를 활용하기 위해서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이를 여럿이 나누면 재정 부담을 많이 덜 수 있다고 한다.
서로 다른 회사 소속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센터 관계자는 "회사를 대표해서 교육을 받는다는 생각에 학생들의 경쟁도 치열하다"며 "물론 다른 교육생과 협력 활동을 통해 서로 정보와 기술을 나누는 것도 소홀하지 않다"고 귀띔했다.
이는 비슷한 분야의 기업들이 모여 있는 독일의 특징도 작용했다. 예나는 20세기부터 광학과 정밀과학 분야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졌던 도시이다. 세계 최초로 플라네토리엄(천체를 관측하는 기계)을 만든 광학 회사 '칼 자이스' 와 세계 최고의 유리 회사로 꼽히는 '쇼트' 등 첨단 광학 기업은 물론 신약 개발의 핵심인 생물 정보학, 생명 공학을 비롯해 소프트웨어, 포토닉스 등을 다루는 기업들이 즐비하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 등 유명 연구소들도 여럿 있다.
예나 직업 교육 센터가 광학, 유리가공, 금속가공, 자동화기기, 정보기술(IT)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바로 이런 지역 산업의 특징을 최대한 반영한 것. 튀링겐주개발공사(LEG) 관계자는 "세 회사뿐만 아니라 예나의 다른 관련 분야 기업과 연구소 인력들도 이 센터의 시설과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며 "이들은 센터 공동 운영 및 참여를 통해 다져진 협력 관계를 공동 연구 프로젝트 진행 등으로 확대하는 효과까지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독일 기업들이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 뭉칠 수 있는 데는 각자가 가장 잘 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경쟁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독일 특유의 실용성도 바탕에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헤르만 헤세의 고향으로 유명한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칼브(Calw)는 예로부터 섬유 관련 산업이 발전했는데, 이 지역 섬유 관련 기업들도 오래 전부터 함께 손 잡고 기술 인력 교육 관련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나(독일)=글ㆍ사진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예나 직업센터 교육 총괄책임자 로타르 프리벨
예나 직업 교육 센터의 교육 전반을 총괄하는 로타르 프리벨(Lothar Friebel)씨는 "모든 독일 기업들은 기술 인력 양성은 회사의 몫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여러 회사가 함께 센터를 운영함으로써 시너지를 충분히 얻고 있다"고 말했다.
- 교육 공동 운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시너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센터에는 한 회사가 훈련용으로 들여 놓기 힘든 비싼 기기를 여럿 보유하고 있다. 당연히 회사는 교육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이런 기기나 장치 사용률도 높일 수 있다. 또 센터가 기술 교육과 훈련을 도맡고 있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이 부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장점도 있다."
-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 기업들은 어떤 역할을 하나.
"운영은 전적으로 센터가 알아서 한다.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교사를 채용하는 모든 문제를 센터가 알아서 한다. 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주 정부 관련 기관 등 제 3자의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센터는 지금까지 4,5차례 인증을 받았다."
- 여러 회사가 함께 모여 기술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독일에서 일반적인가.
"그렇다. 이곳처럼 큰 규모 기업들은 직접 비용을 들여 센터를 운영한다. 반면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동으로 기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비슷한 분야의 기업들이 뭉친다."
- 교육생들은 어떤 교육을 받나.
"대부분 10년 동안 의무 교육을 마치고 만 16세가 되면 기업에 실습생으로 지원하고 여기서 선발된 사람들이 이곳에 온다. 분야에 따라 2년, 3년, 3년 6개월로 다양한데 1년∼1년 6개월은 기본 교육을 받고, 이후에는 생산 현장과 교육 센터에서 동시에 교육을 진행한다. 그리고 마지막 4개월은 앞으로 진로에 대해 결정한다."
- 센터를 통한 교육의 강점은 무엇인가.
"센터에서 회사까지 채 10분도 안 걸리기 때문에 센터에서 배운 것을 회사에 가서 바로 써먹을 수 있고 공장에서 일하면서 부족한 점을 이 곳에서 보충할 수 있다. 교사 1명 당 10명 안팎의 실습생을 담당하기 때문에 평소 진로에 대한 상담과 대화를 충분히 나눌 수 있다."
예나=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과학도시 예나의 대표기업 '칼 자이스'
2008년 독일과학협회는 튀링겐 주의 예나(Jena)에게 '과학의 도시(Stadt der Wissenschaft)'라는 영예를 안겼다. 통일 전 동독 지역에 속해 있던 예나는 현재 독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특히 인구 10만명을 고작 넘는 도시지만 광학, 물리학, 생명 공학 분야의 최첨단 기술력을 가진 기업과 연구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846년 문을 연 세계 최고의 광학 기업 '칼 자이스(KARL ZEISS)' 가 두드러진다. 1923년 세계 최초 플라네토리엄(천체를 관측하는 기계), 53년 미세 수술을 가능케 한 최초의 수술현미경, 73년 최초의 고정밀 3차원 좌표 측정기 등 세상을 뒤흔들었던 제품 모두 칼 자이스의 작품이다. 지금도 할리우드 영화 촬영, 우주 탐사, 해양 탐사에 쓰이는 최첨단 렌즈는 물론 F(포뮬러)-1 차량들이 쓰는 3차원 측정기를 생산하고 있다.
'We Make it Visible(지금껏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게 한다)'이라는 슬로건처럼 칼 자이스는 160년 넘게 오직 '광학'이라는 한 우물만 파왔다. 그런 장인 정신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회사가 동ㆍ서독으로 두 동강이 났다가 91년 독일 통일과 함께 한 회사로 합쳐진 자이스의 역사는 독일 현대사의 상징으로도 꼽히고 있다.
세계 카메라 시장은 캐논과 니콘이 양분하고 있지만, 렌즈에서만큼은 모든 전문가로부터 넘버1으로 인정받는 것이 바로 칼 자이스이다.
칼 자이스는 매출(2008년 27억 유로, 약 4조4,800억 원)의 60%를 출시된 지 5년이 안 된 제품에서 낼 만큼 혁신을 이어가고 있는데 매년 수익의 12%를 연구개발비(R&D)에 쓰고 있다. 매일 2건의 기술 특허 신청을 하고 있기도 하다.
예나=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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