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또다시 중병에 신음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후유증, 그러나 금융위기보다 더 무서운 '재정위기'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 발병한 재정위기의 충격은 글로벌 금융시장 전체를 연일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위기는 재정으로 수습할 수 있지만 재정위기는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주 후반 세계증시를 강타했던 유럽발(發) 재정위기 공포는 주말에도 계속됐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함께 유럽의 '4대 재정난 국가(네 나라의 머릿글자를 따 PIGS국가)로 꼽히는 포르투갈 의회가 5일(현지시간) 재정긴축법안을 부결시키자 국가부도 우려 속에 유럽 증시는 또 한번 추락, 영국과 독일은 1%대, 프랑스는 무려 3%대까지 폭락했다.
연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0분1을 넘고, GDP 규모 만큼의 나라 빚을 떠안고 이들 국가는 사실 시장에선 이미 절반쯤은 부도상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장 안전하다는 국채조차 제대로 팔리지 않을 정도다.
재정위기의 불길은 이제 PIGS를 넘어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의 중심부, 나아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향해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사실 이들 선진국의 재정상태는 PIGS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
무디스도 지난해 전후 최대 재정적자를 기록한 미국을 향해 이미 신용등급강등 가능성을 경고한 상태. 도이체방크는 "PIGS 국가들의 재정 위기는 경기침체 과정에서 엄청난 부채를 쌓은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재정위기의 리허설에 불과하다"고 우려했다.
지금의 재정위기는 금융위기 수술로 인한 합병증 성격이 짙다. 워낙 급박했던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선진국들은 부실정리와 경기부양에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쏟아 부었고, 그 결과 금융위기는 겨우 진정됐지만 이제 재정위기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 '닥터 둠'으로 유명한 가 애널리스트 마크 파버는 "금융위기의 다음 정차역은 정부재정파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정위기가 오면 국가 자체가 무력화되는 만큼, 금융위기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파괴적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만에 하나, 미국 일본 영국 등에서 재정위기가 현실화된다면 세계경제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고, 설령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이 문제가 향후 장기간 세계 경제의 최대 악재가 되기엔 충분하다는 것이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5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미국 일본 등 그간 안전 투자처로 여겨지던 선진국 국채마저 투자자들이 떠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제는 이제 하나의 괴물(금융위기)을 잡았더니 더 무서운 괴물을 맞게 됐다. 그나마 우리나라 재정은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편.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7일 "우리나라는 재정이 건전한고 경상수지흑자와 외환보유액이 뒷받침돼 유럽 재정위기로부터 전염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미 재정적자에 발을 들여 놓은 이상, 결코 안전지대가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가 재정상태 자체로만 보자면 선진국에 비해 양호하지만 금융 등 다른 부문이 취약하고 급속한 고령화 등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안심할 수 만은 없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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