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석 지음/ 푸른숲 발행ㆍ256쪽ㆍ1만5,000원
문화 칼럼니스트로도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철학자 김용석 영산대 교수가 과학기술이 질주하는 이 시대와 인간의 미래를 고대 그리스 신화를 매개로 성찰한 철학 에세이집이다. 과학, 신화, 철학이 주인공인 셈이다.
고대 신화로 오늘의 인간론을 펼칠 수 있는 근거는, 신화를 박제가 된 옛이야기가 아닌 끝없는 변화의 서사로 읽기 때문이다. 메두사는 뱀 머리카락의 괴물로, 그의 눈길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돌로 굳어버린다.
저자는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의 본질과, 만물이론을 꿈꾸는 현대과학의 욕망이 메두사의 시선에 붙들린 화석이 될 위험을 경계한다.
"철학은 항상 너무 늦게 도착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비행을 시작한다"는 헤겔의 말과,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칸트의 마지막 질문을, 그는 '철학은 여명에 비행하는 부엉이어야 한다'와 '인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로 바꾼다.
칸트나 헤겔이 살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게 격변하는 오늘날, '철학이란 무엇인가'보다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답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의 여러 이야기를 뇌과학, 진화생물학, 로봇공학, 우주개발 등 첨단 과학과 연결해 그 성과들이 인간에게 가져올 변화를 짚는다.
예컨대 자신이 상아로 조각한 여인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 이야기는, 인간을 닮고 나아가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의 등장 가능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를 묻는 데 쓰인다.
저자는 인간이 자신을 알려면 타자가 필요함을 상기시키면서,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는 인간을 일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니 반길 일이라고 말한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 이야기는 인터넷 등 미디어 네트워크가 열린 공동체가 아니라 자기도취적 세계에 빠진 '디지털 나르키소스'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미노스의 미궁에 갇힌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영웅 페르세우스 신화에서 편협한 인간중심주의를 읽고 생명 다양성과 공존을 강조하기도 한다.
철학 에세이이지만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다. 부드럽고 유려한 글솜씨가 독자를 편안하게 이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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