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의 퇴임식은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 열린다. 이틀 전인 3일, 외교부 대강당에서는 퇴직자 15명을 위한 상반기 퇴임식이 열렸다. 유명환 장관을 비롯한 간부와 직원 200여 명이 참석한 행사에서 퇴직자들은 훈장과 함께 꽃다발을 받았고, 행사 후에는 장관 주최로 석별 오찬이 이어졌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물러나기
행사에는 작년에 들어온 새내기들의 생각이 많이 반영됐다고 한다. 그들은 퇴직하는 선배들의 행적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보여주고, 'My Way'를 합창했다. 의전이 생명인 부처이니 어련하랴 싶지만, 이처럼 인간적이고 섬세한 진행은 외무고시의 여성 합격자가 70%에 육박할 만큼 여성이 늘어나면서 퇴임식도 여성이 주도한 덕분이라고 한다.
어제 서울의 한 고교에서는 2월 말 퇴직교사 두 분을 위한 정년퇴임식이 열렸다. 1948년 생인 그들은 각각 37년, 32년의 경력을 끝으로'스승의 은혜' 합창을 들으며 교단을 떠났다. 행사는 약력 소개, 이사장 학교장 교우회장 학운위 위원장의 공로패와 기념품 증정, 학교장과 학생대표의 송사, 본인들의 퇴임사 등으로 여법(如法)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3월이 입학과 출발의 시기라면2월은 졸업과 퇴직의 철이다. 이 달 말까지 각급 기관과 조직, 직장에서 퇴임과 헤어짐의 의식과 행사가 계속 치러질 것이다. 제 1막을 마감하고 제 2막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중요한 매듭과 마디가 되는 계기에 걸맞은 격식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언론계를 돌아본다. 모르는 사람들은 "기자도 정년이 있느냐?"고 물으며 놀라는 경우가 있는데, 언론계는 교직은 물론 다른 일반 직장과 비교할 때 정년이 더 짧고, 정년퇴직 자체가 드물 만큼 정해진 수명을 채우기도 어렵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들어온 자취는 있지만 나간 자취는 없다는 점이다.
3년 전 한 언론사의 간부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회사 건물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 언론사 회장은 물론 출신 대학 총장까지 참석했으니 사실상 공식 은퇴식이나 다름없었다. 회사 측은 이 행사와 별도로 그에게 사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연혁이 짧은 언론사로서 정년퇴직자를 보내는 좋은 전통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이런 일은 예외에 속한다. 대부분의 언론사에는 특별한 퇴직행사가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형식적이고, 공직이나 교직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서로 아끼고 스스로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을 보내는 행사나 의식이 제대로 갖춰진다면 좋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것보다 퇴직 후의 진로 문제다. 언론전문 비평 주간신문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언론사에서도 올해를 시작으로 정년퇴직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A사는 올해부터 9년간 207명, B사는 올해부터 8년간 182명이 정년 퇴직한다. 언론인으로서의 체감정년이 오프라인 기자는 51.5세, 온라인 기자는 49.5세라는 한 설문조사를 감안하면 언론사별 실제 퇴직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언론인들은 은퇴 준비가 어려운 것 같고 퇴직 후의 진로 역시 흐리다. 그래서 자칫하면 퇴직 후 삶의 패배자가 되기 쉽다. 교직자는 제자나 논문, 저서가 남지만 기자들에게는 무엇이 남는가. 대선 때 각 후보의 캠프가 언론인들로 미어터지는 것도 그들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구차스러운 구직행위와 다름없는 현상이다.
언론인 존중하는 풍토ㆍ장치를
일의 내용과 방향은 다르지만 언론인들도 나라와 사회 발전을 위해 일정한 기여를 한 사람들이다. 언론사는 사기업일지 몰라도 언론은 공적 영역이다. 언론인들 스스로 은퇴 후를 대비하며 더 노력해야겠지만,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후세대나 같은 세대의 다른 분야 사람들과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공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어느 분야든 노련한 경험자를 우대하고 존중하는 것이 발전되고 성숙한 사회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 하며, 언론인들도 사회적으로 존중돼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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