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에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갑자기 뒷목이 뻐근하고 어지럽다고 해서 약을 드렸더니 약은커녕 물도 삼키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시기에 119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이 10분쯤 뒤 집 근처 큰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어머니는 이미 얼굴이 일그러졌고 의식마저 잃었다.
영상 검사 끝에 의사들은 '혈전이 뇌혈관을 막아 급성으로 뇌졸중이 나타났다'며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약이 있으니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마지막이라니 눈앞이 캄캄했지만 대안이 없다는 말에 절박한 심정으로 동의서에 사인을 하니, 곧바로 링거를 통해 주사약이 투여됐다. 얼마 후 어머니가 기적처럼 깨어났다.'
급성 허혈성 뇌졸중 환자의 보호자가 쓴 치료후기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뇌졸중 환자에게 투여한 주사약은 무엇이었을까?
4시간30분 이내면 치료 가능해
이 뇌졸중 환자에게 투여한 주사약은 tPA. 즉, '재조합 조직 플라스미노겐 활성제(Recombinant Human Tissue Plasminogen Activator)'이다.
이 약은 혈전이 갑자기 혈관을 막아 발생하는 급성 허혈성 뇌졸중에 쓰인다. 발병 후 3시간 이내 정맥 투여하면 혈관을 막고 있던 혈전을 녹여 혈액 흐름을 정상화하고 뇌 손상을 막는다. 때문에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뇌졸중 발생 3시간 이내 tPA를 환자에게 투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tPA 치료제로는 베링거인겔하임의 '액티라제(성분명 알테플라제)'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액티라제는 알테플라제를 주성분으로 하는 생물학적 제제이다.
알테플라제는 혈액을 응고시키는 피브린을 녹이는 데 관여하는 효소로, 혈전을 녹이기 위해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 이 효소를 유전 공학을 이용한 DNA 기술을 활용해 대량 생산한 것이 바로 액티라제이다.
액티라제(tPA)는 1987년 최초 승인된 이후 기존 1세대 혈전용해제(유로키나아제, 스트렙토키나아제)보다 20배 정도 효과 있고, 출혈이나 알레르기 반응과 같은 부작용은 적다.
특히 1995년 세계 최고의 의학저널인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발표된 임상시험 결과, 뇌졸중 증상 발현 후 3시간 이내에 tPA로 치료하면 3개월 후 장애가 없거나 경미할 확률이 이 약으로 치료하지 않을 때보다 30% 이상 높았다.
세계뇌졸중학회(WSC)는 2008년 9월 3시간의 금기를 깨는 'ECASS3'이라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3시간을 넘어 4시간30분까지 tPA를 투여해도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저명한 의학저널인 <란셋(lancet)> 은 인류가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문제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공했다며, ECASS3 연구를 '올해(2008년)의 연구'로 선정하기도 했다. 란셋(lancet)>
현재 유럽에서는 새로운 연구 결과에 근거해 허가사항과 상관없이 4시간30분 내 tPA를 권고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3시간 이내 사용만 허가를 받고 있다.
tPA로 겨우 2%만 치료 받아
tPA는 죽음을 코앞에 둔 뇌졸중 환자의 마지막 보루인 만큼 이와 관련해 새로운 임상연구가 발표될 때마다 전세계 학계와 의료계가 술렁인다.
국내에서도 2009년 뇌졸중 임상 연구센터에서 발행된 '뇌졸중 진료 지침'에서 tPA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0년 병ㆍ의원에서 뇌졸중이 얼마나 잘 처리되고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발표한 뇌졸중 진료 질 평가 보고서에도 tPA 투여율을 평가 잣대로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tPA 치료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한신경과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뇌졸중 환자의 경우 뇌졸중 발생부터 병원 내원까지 평균 1.8일이 걸렸다.
이 중 3시간 이내 내원한 환자는 20.5%에 불과했으며, tPA로 혈전을 치료한 환자는 전체 환자의 2.1%밖에 되지 않았다. 뇌졸중 환자의 98%가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고 있으며, 3시간 이내에 tPA를 투여 받는 환자도 여전히 미미한 실정이다.
나정호(인하대병원 신경과 교수) 대한뇌졸중학회 이사는 "뇌졸중은 얼마나 빨리 tPA 를 투여하느냐에 따라 생존여부와 장애 정도가 달라지는 만큼 발병 즉시 이 약을 보유한 대형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이사는 또한 "현행 보험 급여 기준이 10년 전 약제 허가 당시 연구결과를 근거로 한 탓에 최근 연구 결과를 반영한 학회의 진료지침과 달라서 의료 일선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만큼, 급여 기준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일러스트=김경진기자 jin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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