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 부모와 태어난 땅 따위가 개인의 운명에 미치는 힘은 부당하게 크지만, 그래서 삶은 존재론적으로 불합리하게도 보이지만, 미끄럼틀처럼 보이는 저 구조물 위의 소년은 어쨌거나 지금 신이 났다.
이미 확보한 높이에서 안전하게 미끄러지기 직전의 정지. 그 유보된 유희의 행복은 몇 번이건 다시 고도를 획득할 수 있다는 안정적인 쾌락의 약속 안에서 증폭된다. 자신이 유대인이고, 조국은 이스라엘이고, 그의 동네 예루살렘이 뜨거운 대치의 땅이라는 사실은 사소할 따름이다.
지난 달 27일은 '국제 홀로코스트 기념일'이었다. 외신들은 참경의 흑백 기록사진들을 쏟아냈고,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등 호전적 지도자들은 폴란드와 독일 수용소를 잇달아 방문하면서 또 한 번 그들 민족이 겪은 인종주의의 폭력을 극적으로 환기시켰다.
이스라엘은 2008년 말 이스라엘의 하마스 가자지구 기습 공격에서 범한 범죄에 대한 유엔인권이사회 보고서를 조롱했고, 전범 조사 촉구 결의안을 거부했다. 서안지역 유대인 정착촌은 야금야금 넓혀가면서도, 슈타이니츠 재무장관은 지난 달 말 실업률을 앞세워 "(약 30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내년까지 3만~5만 명으로 축소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소년이 올라앉은 저 조형물은 프랑스 작가 니키 드 셍 팔레가 만든 작품인데, 그 이름이'괴물(The Monster)'이라고 한다. 소년이 자라 '운명의 부당함' 을 깨닫게 될 때, 그의 조국의 이름과 저 조형물의 이름이 겹쳐지지 않기를.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사진 예루살렘=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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