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장 성도윤(63)씨가 대뜸 큰 소리다. "왜 뒷짐지고 가만히 있어. 잘 봐. 보는 것도 만드는 거야." 주방보조 전인중(57)씨를 비롯한 중년남성 13명이 멀뚱멀뚱 얼이 빠진 사이, 성씨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반죽에 팥을 넣더니 3초만에 동그란 찐빵을 빚었다.
손은 굳었으나 입은 멀쩡한 좌중이 "솜씨가 여전하다"고 칭찬릴레이를 잇자 "(찐빵에) 수십 년 이골이 났다"는 성씨의 손이 화답하듯 날았다. 잘 나가던 찐빵가게를 말아먹고 쪽방을 전전한지 4년 만에 다시 빚는 찐빵이었다.
초로의 조수들까지 거느린 찐빵 전문가로 당당히 재기에 성공한 걸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찐빵을 만들긴 하지만 번듯한 가게를 낸 것도, 돈 받고 팔 요량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입담과 손놀림에 취한 중년들도 실은 찐빵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의 찐빵 안엔 팥소 외에 한가지가 더 들어있다. 그 답을 살펴보자.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자활상담센터 지하식당, 성씨의 지휘아래 찐빵 200개(그것도 왕찐빵)를 만들기 위해 모인 이들의 면면은 이렇다.
3번의 이혼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앓은 이모(58)씨, 어머니 사망소식을 듣고 33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으나 집주인에게 전 재산 2억여원을 사기 당한 김장권(63)씨, IMF외환위기 때 사업이 부도나 도피생활을 하는 박태선(63) 방모(50)씨 등이다. 그간 서울역과 쪽방 등에서 웅크려 지냈으니 뭉뚱그려 노숙인, 삶의 낙오자라 불러도 항변할 처지가 못됐다.
제 앞가림도 벅찬 이들이 서로를 보듬기 시작한 건 지난해 5월 무렵. 서울시가 4개 대학(경희 동국 서울시립 성공회대)과 함께 마련한 '희망의 인문학과정'(노숙인 등 저소득소외계층 자립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철학과 문학 역사를 배우겠다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배워서 어디다 쓰냐"는 주위의 핀잔도 속상했다.
그래도 매주 2회 2시간씩 6개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갔다. 학창시절에도 읽지 않았던 책을 들여다보고, 예술공연 관람, 유적지 탐방 등 체험도 많이 했다. 깨달음이 왔다. 인문학의 가치는 사각 틀에 고정된 책 속이 아니라 수많은 삶이 숨쉬는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육신의 양식과 달리 마음의 양식은 나눠야 배부르다는 이치를 터득한 것이다.
인문학 과정 수료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장의 배고픔보다 나눔에 목말랐다. 배동효(47)씨가 "우리도 봉사라는 걸 해보자"고 바람을 넣었고, 경희대에서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31명이 동참하겠노라고 약속했다. 드디어 지난해 11월 노숙인과 소외계층으로 구성된 봉사모임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만들어졌다. "나락으로 떨어졌던 자만이 바닥의 깊이를 안다"는 게 이들의 자신감이었다.
마음은 충만했으나 현실은 누추했다. 매달 5,000원씩 회비를 걷자는 회칙을 세웠지만 지난해 12월엔 절반의 회원만 냈다. 대부분 자활근로로 한달 39만1,000원을 받는 회원들에게 5,000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총무 이상영(57)씨는 "살림살이가 빠듯하지만 책임감을 갖고 꾸준히 활동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은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 알량한 처지에도 지난해 크리스마스엔 결손가정 어린이들에게, 1월 설엔 쪽방촌 주민들에게 귤과 김밥을 나눠줬다.
찐빵 프로젝트는 세 번째 봉사다. 물품을 사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왕년에 찐빵깨나 만들어봤다는 회원 성씨와 더불어 직접 만든 게 핵심이다. 회원들은 거금 20여만원을 들여 황학동 서울중앙시장에서 밀가루와 팥, 솥, 반죽용 합판을 샀다. 김장권씨는 특별한 행사를 위해 거금 2만원을 특별회비로 냈다. 박수갈채가 터졌다. 간사 배동효씨는 "이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한마디 보탰다.
이날 7시간의 왁자한 작업 끝에 왕찐빵 250개가 완성됐다. 평생 빚어보지도 않은 찐빵을 만들려고 멀리 경기 수원시와 파주시에서 찾아온 회원도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찐빵은 비닐봉투에 고이 모셔졌다.
이날 오후 3시, 스산하고 한적하던 탑골공원엔 찐빵잔치가 열렸다. 영하의 날씨는 여전했지만 노인 50여명은 특별한 찐빵 맛을 보기 위해 식권을 받아 들고 길다랗게 늘어섰다. 식권엔 양심껏 1인당 한 개씩 받으라는 뜻으로 마음 심(心)자를 썼다. 7시간이 걸려 만든 찐빵은 5분만에 사라졌다. 미처 식권을 받지 못한 할아버지에겐 남은 빵을 나눠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뒤늦게 빵을 받은 장정기(75)씨는 "하하 기분 좋구먼. 하나 더 줬으면 좋겠네"라고 웃었고, 다른 노인들은 "아따 빵 먹고 체한다"는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빵을 해치웠다.
노인들의 웃음에 절로 배가 부른 회원들은 현장에서 즉석 회의까지 열었다. " 다음에는 음료수도 준비해 빵과 같이 나눠주자"는 제의?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인문학이 뭐 대수겠습니까. 배운 만큼 나누고, 어려울수록 남을 도우면 삶이 가치 있고 행복해진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들이 빚은 찐빵 속에 팥소와 더불어 들어있는 건 나눔이고 희망이며 사랑이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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