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문화예술 진흥을 책임지는 기관의 장이 하루아침에 두 명이 돼버렸다. 현 정부가 들어선 후 약 1년 만인 2008년 1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직에서 임기 도중 해임됐던 김정헌 전 위원장이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 끝에 법원으로부터 해임취소 판결, 해임처분집행정지 결정을 잇달아 받고 위원장 직에 즉각 복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의 원래 임기는 올해 9월까지, 자칫하면 앞으로 8개월 동안 문화예술위에는 오광수 현 위원장과 김 전 위원장, 두 명의 장이 존재하게 생겼다.
더 가관인 것은 김 전 위원장을 해임했던 문화체육관광부의 반응이다.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김 전 위원장 등 몇몇 문화계 인사들에 대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직후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기관장은 스스로 물러나라"고 했던 유인촌 문화부 장관, 그는 두 명의 문화예술위원장이 존재하게 된 상황에 대해 "그렇게도 한 번 해보고… 재미있지 않겠어?"라고 어이없는 발언을 했다. 다른 문화부 공무원은 "우리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문화예술위에서 (한 사람의 위원장을) 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면피에 급급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월요일 문화예술위로 다시 출근하면서 이번 일을 "문화예술계의 망신"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다. 기자는 김정헌 전 위원장도, 오광수 현 위원장도 만나본 적이 있다. 보기에 그들은 좌파, 우파 예술가 혹은 문화예술위원장이기 이전에 각자 미술판에서 오래 일하며 권위를 인정받아 온 한 사람의 화가, 또 한 사람의 미술평론가다. 처음부터 문화예술위원장이라는, 그리 대단하지도 않아 보이는 권력에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역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임기 도중 문화부에 의해 해임된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황지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도 마찬가지. 그들 두 사람은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의 경우와는 달리, 각각 해임 취소와 교수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그들이 문화예술인으로서 느끼는 망신스런 감정은 더 클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출근하던 날 한 기자의 질문에 자신의 해임 경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다. "문화부의 방법이 문제다. 외국인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스를 만들었는데 그 키의 보안관리가 잘못됐다는 것까지 따지더라… 위원장인 나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 직원들을 닦달한 뒤 '위원장이 이렇게 한 것 맞지 않느냐'고 확인도장을 찍도록 했다." 그런 방법이야 병가지상사로 볼 수도 있겠다. 코드가 달라 마음에 안 드는 자 쫓아내겠다는데 그쯤이야.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런 치졸한 방식에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좌파, 우파라는 지겨운 잣대로 그런 짓을 되풀이할 것인가. 5년짜리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회에서 갈등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의견의 다름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다.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이나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성숙성을 가늠하는 기준도 갈등을 해결하는 태도와 방법이다.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위의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는 마침 아주 잘 벌어진, 잘 음미해야 할 상징적인 사건이다. 우파와 좌파가 권력을, 그것도 작은 문화권력 하나를 놓고 갈등하다 빚어진 이 사태를 어떻게 푸느냐 하는 것은 사사건건 좌우로 갈려 싸움질하는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작은 지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그 실마리는 김 전 위원장을 해임했던 문화부가 쥐고 있다. 우리 흔히 쓰는 결자해지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딱 들어맞는 것 아니겠는가.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싶다.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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