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일본의 정상들이 공교롭게도 지지율의 덫에 함께 걸려 있다. 국정 운영의 잘잘못을 가르는 기준치로 인식되는 지지율 50%를 넘지 못한 채 답보상태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다 해도 이들의 리더십이 시험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종시 프레임에 갇힌 이 대통령
반세기에 걸친 자민당 집권체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킨 일본 하토야마 정권은 출범 직후 75%였던 지지율이 불과 4개월 만에 40%도 위태롭다.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서 비롯된 미일 동맹관계의 균열, 권력배분 문제 등 정책 부재가 드러난 데 이어 오자와(小澤) 간사장의 정치자금 사건으로 중도하차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집권 2년차인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도도 50% 아래로 주저앉았다. 미국 역대 대통령의 2년차 지지도 중 끝에서 두 번째다. 오바마가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담대한 개혁들은 보수층의 거센 저항에 밀려 변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오바마는 정책의 초점을 중산층 끌어안기에 맞추겠다고 밝혔지만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다.
미일 정상들이 취임 초기의 높은 지지율을 지키지 못하고 추락하는 것에 비하면 3년차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의 처지는 다소 나아 보인다. 쇠고기 파동 때 10%대까지 내려갔던 지지율이 40~50%를 오르내린다. 친서민ㆍ중도실용 노선과 함께 경제 회복, 원전 수주 등 굵직굵직한 성과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호의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요즘의 지지율은 냉철히 말하면 이 대통령의 선거 때 득표율(48.7%)을 원상회복한 것에 불과하다. 여전히 국민의 절반은 이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정권 차원에서 역점을 둔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동력이 부족하다.
지금 시점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코 앞에 닥친 지방선거 때문이다. 역대 선거 분석자료를 보면 대통령 지지도는 지방선거에서 중요한 변수가 됐다. 1998년 6월 치러진 제2회 지방선거의 경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가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2002년 6월의 낮은 지지도(38.7%)는 그 달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불리하게 나타났다. 2006년 5월의 4회 지방선거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35%)는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연결됐다.
한동안 기세가 오르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것은 두 말할 여지없이 세종시 프레임에 갇혀 있는 탓이다. 여권은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면 찬성 여론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그 후 여론잡기에 올인하다시피 했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집권세력 간의 추진 시기를 둘러싼 이견, 친이-친박 간 마찰, 여기에 정치적ㆍ사회적 갈등까지 겹쳐 갈수록 꼬이는 양상이다.
문제는 언제까지 여론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리며 지지고 볶고 있을 만큼 우리의 현실이 한가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 대통령은 진정 국가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때가 됐다. 그 고민의 정점은 수도권과 지방, 충청의 여론이 부닥치게 될 설 즈음이 될 것이다. 만약 설이 지나고도 민심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주저하지 말고 '영예로운 후퇴'를 준비해야 한다.
물론 그 민심의 핵심은 충청주민의 여론이다. 세종시는 기본적으로 충청 지역민과의 약속으로 그들의 여론이 우선시돼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약속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 당사자를 굴복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심 안 바뀌면 영예롭게 후퇴를
민심이 따라주지 않고 정치역학상으로도 불가능한 일을 무한정 붙잡고 있어봐야 돌아오는 것은 지지율 하락과 지방선거 패배, 그로 인한 레임덕 가속화다. 여기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끝없는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대한민국호의 표류와 좌초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개혁정책의 무리한 추진보다 남은 재임기간을 일자리 창출에 전념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선언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게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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