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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 유씨씨]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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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 유씨씨] 아바타

입력
2010.02.0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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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은 스토리를 화려한 볼거리로 치장한 영화일 뿐."

오랫동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한국에서 이러한 비난에 직면했다. 이러한 종류의 비난은 1980년대 시작됐다. 드디어 한국의 영화감독들이 자의식을 가진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대학가에서는 민족적 예술에 대한 논의가 왕성했던 시절이다.

영화적 진화의 극단을 보여주다

어쩌면 그것은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정치적 논리가 발견한 미학적 슬로건이기도 했다. <터미네이터> 도 <에일리언> 도, <쥬라기 공원> 도 <반지의 제왕> 까지도 언제나 '바보 같은 스토리를 화려한 볼거리로 치장한 영화'가 됐다. 민족주의는 우리 사회 민주화의 상대적 진전에 따라 애국주의로 변모해 갔고, 규모로는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없다는 산업적 허무주의도 이 슬로건의 생명력에 기여했다.

많은 관객이 본 영화일수록 더 자주 이 슬로건을 듣는 것을 보면 문화적 엘리트주의는 이 슬로건의 무의식이다. 그리고 이 호소력 있는 슬로건이 발명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아바타> 역시도 같은 비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영화가 스토리를 도입한 건 1903 년 에드윈 포터의 <대열차 강도> 부터다. 그 이전까지 영화는 서커스나 마술처럼 신기한 '움직이는 사진'이었다. <대열차 강도> 에 이어 <국가의 탄생> 등의 그리피스 영화가 나오면서 영화는 연극이나 소설처럼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로서 빠르게 산업적 전열을 정비했다. 그리고 오늘날 영화는 가장 강력한 스토리텔링 매체가 되었다.

<대열차 강도> 와 <아바타> 사이의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가 한 일은 좀 더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의 기술들을 개발해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두 시간 안에 포용될 수 있는 효과적인 스토리 방식을 개발하는 '스토리 안'쪽의 일과 그것들을 호소력 있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스토리 밖'의 일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스토리의 안쪽과 바깥쪽의 경계는 희미해져 갔다.

스토리와 기술은 하나의 비주얼 스토리텔링(Visual Storytelling)으로 결합해갔다. <아바타> 는 이러한 영화적 진화의 가장 극단적인 현재이다. 스토리와 볼거리의 이분법이 <아바타> 에 이르러 유난히 부당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바타> 에서 스토리는 기술을 촉발하고, 기술은 스토리를 만나면서 인간화된다. 약자가 강자를 무찌르는, 인류 스토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원형은 이 영화에서 가장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포맷된다. 디지털 캐릭터들은 스토리와 결합하면서 어느 방송 작가의 말대로 '목침을 가로로 코에 건'동물들의 감정이 어떻게 인간화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아바타> 가 새로운 것은 3D 입체 디지털 기술이 아니다. 정작 새로운 것은 그 기술과 결합하면서 영화의 미래에 대한 강력한 암시를 보여주는 스토리이다. 영화가 판타지라면, <아바타> 는 우리 일상의 풍경들이 스토리에 의해 재편되면서 얻게 되는 정서적 보상으로서의 판타지에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로 우리의 현재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판타지로 그 개념을 변모시키고 있다.

영화, 앞으로도 가장 강력한 매체

영화를 꿈이라고 한다면, <아바타> 가 보여주는 것은 비유로서의 꿈이 아닌 꿈 그 자체다. 버추얼 리얼리티는 단순한 시각효과가 아닌 스토리가 되었다. 물리적 세상을 벗어나서, 인터넷과 디지털 게임들 속에서 또 하나의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은 <아바타> 에 이르러 비로소 영화라는 매체 속에 수용된 것이다.

이 신생 매체들의 위협 속에서 고사될 것으로 보였던 영화는 자신의 경쟁자들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21세기에도 가장 강력한 매체로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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