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기계론적 이성주의는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켜 문명의 위기를 가져온 주범으로 지목돼왔다. 이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전제한 동양사상이었다. 예를 들어 스스로 족함(自足ㆍ자족)을 이야기하는 노장철학이 한동안 한국 철학계를 풍미했다.
김진석(52) 인하대 철학과 교수는 <더러운 철학> (개마고원 발행)에서 이 현상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그는 에두르지 않고 현재 한국 철학계의 노장철학 수용의 방법을 "근본주의적"이라고 몰아붙이며 엄혹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더러운>
노자의 '자연'과 '무위'를 그저 서양의 '폭력적' 혹은 '패권적' 사유와 단순하게 대비하는 것이 한 예다. 김 교수는 강조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그 자체로 선호되는 것이 아니라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길 수 있기에 선호되는 것입니다. 노자의 텍스트는 병서(兵書)의 측면이 있지만 이 부분이 알게 모르게 배제되고 어떤 공격성과 무모함도 가지지 않은 이상적 자연이 숭상되고 있는 것이지요. 노자의 자연에 대한 우리 철학계의 이해는 '생태 근본주의적 자연'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노자의 사상을 어떠한 폭력도 없는 공생, 어떠한 갈등도 없는 평화적 공생만을 추구하는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인간을 위해 자연을 대상화하는 서양의 인간중심주의와 방향만 다를 뿐 근본주의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여기에 일상적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관념적으로 자연이념만을 추상적으로 주장하는 많은 이들이 김 교수로 하여금 근년의 노장 열풍을 삐딱하게 바라보도록 했다.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는 지식인들의 형이상학적 태도에 대한 김 교수의 비판은 책 제목인 '더러운 철학'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국의 철학자들은 다른 무언가 고귀하고 무거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지적 물음의 보편적인 방법과 근본에 대해 묻고 또 묻지만, 구체적인 현실에서 그것이 실제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들이 무엇인지 따져 묻지는 않지요. '더럽다'는 말은 이런 철학자의 삶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세상을 깨끗하게 하지 못하는 철학, 그러면서 원칙과 이상의 깨끗함만을 말하는 철학에 대해 그는 회의적이다. 그런 철학행위는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수해 복구 현장에 시찰을 한답시고 나와 실제로는 일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것과 비슷한 더러운 행위라는 것이다.
<더러운 철학> 에 실린 그의 독설은 노장 철학에 대한 오독, 삶의 현실과 유리된 철학행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비판의 칼날은 이른바 철학 대중화 열풍을 불러일으킨 도올 김용옥의 동양학 강의에도 정조준된다. 김 교수는 상품으로 가공된 지식, 명확한 자기성찰이 부족한 지식 등도 문제삼지만 노자, 공자 등의 사상에 대한 도올의 훈고학적 해석을 가장 비판적으로 본다. "노자와 공자의 말씀은 어떤 숭고한 보물인데 그냥 그걸 배우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식이 도올의 작업이지요. 그러나 과거의 지식체계와 지금의 지식체계는 다릅니다. 모든 것이 다 도움이 되고 다 필요로 하는 지식이 아닙니다. 훌륭한 스승들이 '나를 밟고 나가라'라고 한 말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더러운>
니체 철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강단에서뿐 아니라 계간 '황해문화' 편집위원 등으로 활발한 사회비평 활동도 하고 있다. <더러운 철학> 은 극단적 진보주의, 극단적 보수주의가 득세하는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 <기우뚱한 균형> (2008) 이후 그가 2년 만에 낸 책이다. 이번에는 비판의 칼날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철학계 내부로 겨눈 것이다. 기우뚱한> 더러운>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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