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전문학원으로 유명한 서울 강남 R학원측의 스타강사 손모(39)씨 납치 폭행 사건의 윤곽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특히 2차 납치 현장에 동석한 유명 로펌의 L변호사가 R학원 대표 박모(40)씨와 학원 동업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1일 R학원측에 납치돼 폭행 당한 뒤 서울 여의도 M호텔에 은신해 있던 손씨는 지난달 15일 새벽 1시 호텔 방을 나오다 박씨 일행에 잡혀 강남의 모 룸살롱으로 끌려갔다. 새벽 4시께 이 룸살롱으로 L변호사가 찾아와 박씨 일행과 합류했으며, 이들은 손씨를 H호텔 커피숍으로 데리고 가 '납치당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손씨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와 이메일을 통해 L변호사가 당시 "선생님(손씨)이 가만 있으면 (많은) 연봉을 받고 더 좋은 조건이 있는데 왜 이러시냐"며 회유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L변호사는 로펌 홍보실을 통해 "새벽에 합의문을 검토해달라는 박씨의 연락을 받고 가보니 룸살롱이어서 장소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호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며 "합의서를 봐준 것이 전부다"라고 해명했다.
손씨가 결국 오전 7시께 각서에 서명하자 L변호사는 돌아가고 박씨 일행은 손씨를 M호텔로 데려갔다. 박씨의 부하 직원 3~4명이 계속 손씨를 감시하자 손씨는 경찰에 연락했고, 이날 오후 2시께 경찰관들이 도착하고서야 M호텔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당시 형사들이 현장에서 박씨 부하 직원들을 체포할 경우 박씨가 해외로 도망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 손씨만 데리고 나왔고, 곧바로 박씨에 대한 출국정지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손씨는 더 이상 국내에 있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18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손씨는 "박씨가 심부름센터 직원들을 시켜서 내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비행기 스케줄 등을 파악해 나를 계속 추적해 일본에서 공항을 옮겨 다니면서 비행기를 갈아타 미국으로 겨우 나왔다"고 주장했다.
L변호사가 손씨의 각서를 받는 과정에 개입한 것은 박씨와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라는 게 손씨의 설명이다. L변호사는 미국 UC버클리 로스쿨에 다닐 때 박씨와 룸메이트였으며 자신이 일하는 로펌에서 박씨가 함께 근무한 적이 있고, 이런 인연으로 지금도 R학원 관련 소송을 도맡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8년 손씨가 직접 운영한 강남의 D학원에 각각 지분 25%씩 투자하기도 했다. 손씨는 "지난해 연말 내 재계약 문제뿐만 아니라 D학원 폐쇄 여부를 두고 박씨와 갈등을 빚었다"며 "박씨가 D학원에 투자한 사실이 알려져 R학원측 일부 주주들이 박씨에 대한 배임 혐의를 제기하자 박씨가 D학원을 폐쇄하려 해 트러블이 있었다"고 말했다. D학원은 손씨가 납치를 당한 후 잠적한 뒤 휴원 상태다.
손씨는 또 지난해 12월 21일 경기 가평의 한 별장에 납치돼 폭행당한 배경에 대해 "박씨가 R학원의 매각을 추진하면서 값을 높게 받기 위해 유명 강사들을 모두 2013년까지 묶어두려는 계약서를 작성토록 했다"며 "나에겐 3년간 75억원의 계약을 제시했는데 이를 거절하자 납치 후 살해 위협까지 했다"고 말했다.
손씨는 "SAT 시장은 원래 소수의 학원과 강사들이 지배하는 조용한 시장이었는데, 박씨 같은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으면서 매우 시끄러워졌다"며 "다른 학원을 전부 적으로 간주하고 망가뜨리려고 하는 잘못된 마인드가 3년 동안 쌓여오다가 일이 터진 것 같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적의 박 대표는 2005년께 국내로 들어와 L변호사가 일하는 유명 로펌에서 국제변호사로 근무했고, P엔터테인먼트 고문변호사 등을 맡다가 2007년 R학원을 인수해 학원 경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한편 경찰은 박씨를 3일 소환해 손씨 납치 폭행 혐의 등을 조사할 예정이며, L변호사도 조만간 소환할 방침이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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