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별명은 '할리우드의 아마조네스'다. 182㎝의 훤칠한 키에 긴 갈색 머리를 흩날리는 외모는 흡사 패션모델과도 같다. 그가 만든, 남성미가 출렁거리는 영화와는 딴판이다.
1990년대 영화광이라면 '폭풍 속으로'(1991)를 기억할 것이다. 재물보다 모험을 좇고, 비루한 삶 대신 화끈한 죽음을 택했던 사나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다. 특히나 경찰의 추격을 피해 으르렁거리는 거친 파도 속으로 떠나던 신비의 사나이 보디(패트릭 스웨이즈)가 짓던 마지막 미소는 쉬 잊혀지지 않는다. 여성 감독으로는 드물게 할리우드에서 액션영화를 연출한 캐슬린 비글로의 솜씨다.
비글로는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여성의 입장을 대변했다. 나약한 피해자로 여성을 묘사하기 일쑤였던 주류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가해자를 응징하는 강한 여성의 면모를 스크린에 투영했다. 제이미 리 커티스를 여성 경관 터너로 등장시킨 '블루 스틸'(1989)이 그 예다. 터너의 총구가 뿜는 불꽃에 움찔했을 남자가 어디 한둘이었을까. 그의 전 남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트루 라이즈'(1994)에서 커티스를 무지렁이 부엌데기로 전락시켰던 것과 비교하면 배우 쓰임새가 천양지차다.
이별의 아픔 때문이었을까. 단지 영화적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1991년 카메론이 '터미네이터 2'의 여전사 린다 해밀턴과 사랑에 빠지면서 우연히도 비글로의 영화 인생은 급전직하했다. 뛰어난 회화적 감각과 액션 연출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조금씩 잊혀졌다. 일부 영화광에겐 카메론의 전 부인이라는 수식어로만 남았다.
비글로는 지난달 31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국감독조합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군 폭탄제거팀의 이야기를 다룬 '허트 로커'다. 부진의 수렁에서 벗어나 감독으로서 부활을 알린 셈이다. '아바타'의 카메론도 후보에 올랐으나 비글로를 당해내지 못했다. 감독조합상은 1948년 처음 시상한 이래 단 6차례를 빼곤 아카데미영화상과 동일한 감독상 수상자를 배출해 왔다. 비글로 입장에선 아카데미상 감독상이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있는 것이다.
카메론은 지난달 17일 골든글로브상에서 감독상을 움켜쥔 채 "비글로는 충분히 상을 받을 만하다"며 짐짓 여유를 부렸다. 과연 그는 7일 열릴 아카데미영화상에서 다시 한 번 '세상의 왕'을 자임할 수 있을까. 그의 미소가 전 부인인 비글로에게 달려 있다. 올해 아카데미상의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인생, 참 묘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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