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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일꾼' 외국인 이웃사촌] (1) 대구세계육상대회, 우리에게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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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일꾼' 외국인 이웃사촌] (1) 대구세계육상대회, 우리에게 맡겨라

입력
2010.02.01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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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 시대, 지방이 직접 세계로 통하는 창(窓)을 낸 지도 오래다.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서도 더 이상 외국인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은 지역 특유의 느린 템포를 사랑한다. 또 자연스레 유교를 논하고, 재래시장에도 간다.

지역사회를 위해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도 기꺼이 다가간다. 사투리 몇 마디쯤 자연스럽게 말하는 그들에게서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외국인'의 소중함을 느낀다. 한국의 지방 도시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지역 발전을 위해 정성과 마음을 한껏 기울이는 외국인들을 5회에 걸쳐 찾아간다.

■ 조직위 직원 산예가 본 대구 "성공개최 열정만큼은 못따라오죠"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D_573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2시 대구 중구 중앙대로의 대회조직위원회 건물 4층 국제협력팀. 제리 링(33ㆍ싱가포르) 팀장과 직원 스티븐 산예(23ㆍ미국)씨는 인터넷을 뒤지랴, 세계 곳곳과 통화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달 2일 나흘 일정으로 대구를 찾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실사단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프리젠테이션부터 안내 숙박 식사까지 실사단 10명의 모든 일정을 챙겨야 한다. 영문보고서를 만드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링 팀장은 이미 이날 아침부터 산예씨에게 "오늘은 금요일이지만 집에 일찍 들어갈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고 일러 둔 터. 산예씨는 "일하는 것도 한국식"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두 사람은 일 처리 능력과 성실성 때문에 조직위에 없어선 안 될 보배가 됐다. 지난달 19, 20일 대구의 한 호텔에서 조직위 주최로 열린 육상마케팅회의에서도 A4 용지 25쪽짜리의 영문보고서를 하룻밤 만에 뚝딱 만들어 내 조직위 직원들이 혀를 내두르게 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국 여성을 배필(30)로 맞아 달서구 성당동에 신혼살림을 차린 링 팀장은 서울의 세계태권도연맹에서 5년간 국제회의 영어 통ㆍ번역과 도핑 테스트를 전담한 인재다. 이 때문에 국제 스포츠 매커니즘에 정통하다. 또 부모가 중국인이라 중국어 보통어와 광둥어를 잘하는 데다 영어 한국어 말레이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조직위는 이런 점을 높이 사 지난해 3월 그를 합류시켰다.

산예씨의 아버지는 주한미군 대구기지 사령관을 지낸 마이클 산예(47ㆍ육군) 대령이다. 부자가 대를 이어 대구에 충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6월 아버지가 나토로 발령 났을 때 벨기에행을 포기하고 1년 가까이 자원 봉사자로 일하던 조직위를 첫 직장으로 선택, 인생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남구 봉덕동의 한 빌라에 자취방도 얻었다.

두 사람은 5월 19일 대회를 성공적으로 열기 전에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IAAF의 현장 방문과 실사가 끊이지 않고 자원 봉사자 모집, 대구국제마라톤대회 개최, 대회 마스코트 공표 및 홍보, 명예기자단 발대식 등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김연아 박태환 장미란을 스포츠 인재로 만든 것도,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한국이 저력을 보인 것도 모두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열정 때문"이라며 "내년 대회가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열정"이라고 말했다.

대구= 글·사진 전준호기자 jhjun@hk.co.kr

■ "맛·멋·情 '3박자'… 제2고향 대구"

"대구 사투리에 벌써 중독됐어요. 한국의 다른 도시에서는 못 살 것 같습니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조직위원회 국제협력팀 직원 스티븐 산예씨에게 대구는 제2의 고향이다. 서울 부산 대전 포항 등 다른 도시를 많이 다녀 봤지만 대구로 돌아와야 마음이 푸근하다. "같은 영남권인 부산에 가서 대구 사투리로 몇 마디 했더니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요. 대구에서만 겨우 말이 통하는 걸 보면 대구를 떠나서 살기는 힘들 것 같아요."

2007년 6월 미 펜실베이니아주 쉬펜스버그대 지구환경공학과 2학년 과정을 마친 그는 여름방학을 이용, 군인인 아버지 근무지를 찾아 대구에 왔다가 동대구로를 뒤덮은 히말라야시더에 반해 이곳에 눌러앉았다.

하지만 3년 가까이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대구 사람이다. "미국에서는 자신과 가족만 생각하고 사는데 대구에서는 동료와 친구들이 다들 서로 너무 잘 챙겨 줘요. 대구 사람들 얼핏 보면 엄청 무뚝뚝하지만 깊은 속정이 있어요."

그가 조직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자원 봉사자가 된 2008년 9월. 조직위에서 인터뷰와 통역, 영문 보도 자료 초안 작성 등 자원 봉사를 하던 그는 지난해 6월 인생의 기로에 섰다. 아버지의 근무지가 바뀌면서 미국의 대학과 유럽의 부모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상황에서 조직위가 특채를 제의했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은 대구였다. 자취방에 혼자 살아도 좋았다. 그의 인생을 통틀어 비로소 완전하게 독립한 것이다.

그는 정식 입사 2개월 만에 대박을 날렸다. 조직위에 <서양인이 본 한 국제 도시, 대구> 란 영문판 포켓북의 제작을 제안하고 직접 만든 것이다. (IAAF) 1. .

산예씨는 "대구는 갓바위 동화사 서문시장 약령시 동성로 등 가볼 곳 천진데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대부분 서울만 둘러보고 가는 것은 큰 문제"라며 "대구 관광을 활성화해 대회 관객 유치에 도움이 되도록 외국인 대상의 홍보 책자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이드북을 펼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가 보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외국인을 위한 기존의 대구 가이드북은 막창을 '튀긴 돼지 창자'로 번역, 혐오감을 부추기는 등 문제점 투성이였어요. 정보는 빠짐없이 있는데 느낌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이 느낌을 살리기 위해 그는 대구 구석구석을 샅샅이 누볐다. 한국말을 잘 모르는 그였지만 언어 장벽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구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줘 한국말을 잘 몰라도 큰 불편은 없었어요."

지난해 상반기 조직위가 한국인 자원 봉사자를 모집할 때였다. 지원자들이 좀처럼 영어로 자기 소개를 하지 않아 실력이 낮은 것으로 오해했지만 한번 말문이 터지니까 놀랄 정도였다. "젊은 층 대부분이 영어를 할 수 있는데 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말을 끌어내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인색한 평가를 받는 대구 음식도 외국인에게는 훌륭한 요리로 둔갑한다. 지난해 조직위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20대 초반의 영국인 총각은 당초 머리와 꼬리가 그대로 달려 있는 물고기 요리에도 기겁할 만큼 한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대구를 떠날 때는 산낙지도 먹을 정도로 달라졌다고 한다.

산예씨는 "외국인 모두 대구 오면 막창을 먹어 볼 겁니다. 맛있잖아요. 음식은 문화 차이가 있는 만큼 대구의 맛을 발전시키는 것이 세계화의 지름길이죠"라고 힘주어 말했다.

폭탄주도 마시는 그가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은 대중목욕탕과 찜질방이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외국인 대부분이 그렇단다. 하지만 언젠가는 시도해 보려 한다.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때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다르다'라는 열린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가 보는 대구의 국제화 지수는 상당히 높았다. 미국 테네시의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태어난 그에게 인구 250만명의 대구는 그 자체가 국제 도시였다. "대구는 인구 100명 중 1명꼴로 외국인이 살고 있는 국제 도시"라는 그는 "교통, 숙박, 시민 의식 모두 흠잡을 곳이 없어요"라고 새 고향을 칭찬했다.

하지만 현재 추진 중인 메디시티와 대구국제뮤직컬페스티벌, 국제학교 조성 등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 차원 높은 국제 도시가 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산예씨는 내년 8월 열리는 대회의 성공 개최를 위해 대구 지역 외국인들과도 홍보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대구를 알리는 월간 <대구 포켓> 의 편집장 크렉 화이트(36ㆍ캐나다)씨 역시 수시로 만나 협조를 구한다. 덕분에 4월에는 영문판 인터넷 홈페이지가 말끔히 새 단장을 하게 된다.

■ 문동후 조직위 부위원장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1년 반 앞둔 대구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보물입니다."

제리 링과 스티븐 산예에 대한 문동후 대회조직위원회 상근부위원장 겸 사무총장의 평가는 후하다 못해 넘쳐흘렀다. "한 명이 같은 또래 5, 6명 몫을 해내요"라는 평이고 보면 공치사는 아닌 듯했다.

문 부위원장과 링 팀장은 세계태권도연맹에서도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다. 2004년 당시 연맹 사무총장이었던 문 부위원장이 태권도개혁위원회를 구성할 때 한국에 배낭 여행 왔다 지원한 링을 선택해 이번 조직위까지 계속 한 팀을 이루고 있다.

문 부위원장은 "태권도연맹 시절 링은 성실한 데다 외국어 및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획 능력을 갖추고 있어 해외 국제회의 때는 반드시 같이 갔는데 그는 귀국 비행기에서 모든 보고서를 완성해 놓곤 했어요"라고 기억했다.

태권도연맹에서 쌓은 링의 경력은 조직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문 부위원장은 "국제 스포츠 대회는 규모와 방법에서 차이가 있지만 개최지 선정부터 국내ㆍ외 실사, 마케팅, 선수 도핑 테스트 등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태권도연맹에서 잔뼈가 굵은 링은 국내에서도 몇 안되는 외국인 스포츠 전문가죠"라고 평했다.

그는 "링이 평생 직장인 태권도연맹을 그만두고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될 조직위에 지원했을 때 내심 반가웠지만 말렸어요"라며 "기왕에 왔으니 한국을 위해서도, 링을 위해서도 한국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끝까지 챙겨야죠"라고 약속했다.

산예에 대한 평가도 못지않다. 2008년 9월 그가 조직위에 자원 봉사자로 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영어를 제대로 쓰는 인물이 조직위에는 없었다. 그래서 산예에게는 걸핏하면 번역과 통역에 대한 과부하가 걸렸다. "조직위 직원 모두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웃으면서 해내는 산예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자고 했어요. 또 대구에 대한 애착은 어떻고요."

산예 어머니의 조직위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다. 2008년 추수감사절 때는 직접 조직위를 찾아와 칠면조 요리로 뷔페를 차려 주면서 감사의 마음을 나눴다고 한다.

링과 산예가 동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보통 국제회의나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실사가 있더라도 참석자나 간부가 아니면 내용을 잘 모르지만 링과 산예가 영문보고서를 작성한 후에는 100여명의 조직위 직원 모두 한 눈에 흐름을 파악하게 된 것이다. 링이 보고서를 만들면 산예가 녹음된 내용을 다시 듣고 오자 하나 없는 완제품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대구= 글·사진 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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