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이후 최대라는 경제위기도 해결의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세계 지도자 모임인 다보스포럼 같은 곳에서도 작년에는 당면한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했지만 올해는 위기 후의 과제를 논의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런 과제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위기가 재발하지 않게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다. 또 그런 목적으로 지금까지 많은 방안이 나왔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 분리, 투자은행 자본규제 강화, 중앙은행의 역할 재정립, 파생상품 거래 투명성 확보, 금융 종사자의 단기 위주 인센티브구조 개선, 신용평가기구의 정직성 확보, 위기 시 자본으로 전환 가능한 부채 도입 등이 그것이다.
'과소'보다 '과잉' 규제가 안전
'대마불사'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금융회사의 규모를 제한하고, 부득이 정부가 개입했을 때 구조조정 비용을 금융회사가 감당하도록 보험을 들게 하는 방안, 일정 수준 이상의 부채에 과세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나아가서 국제 단기자본 이동에 '토빈세'를 매기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런 조치는 규제 강화를 의미한다. 월가 같은 금융계는 당연히 반발하고 있다. 정부 개입에 반대하는 정치가나 일부 학자, 언론도 가세하는 추세다. 이들이 규제에 반대하는 주된 근거는 금융의 기술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는 금융 기술발전의 결과이고 이것은 다른 기술발전의 경우와 같다고 한다. 예컨대 보잉747이라는 기술발전 덕에 많은 사람이 큰 편익을 누리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결정적 문제가 있다. 747기 사고의 희생자는 자기 위험부담으로 탑승한 사람들이다. 반면 금융위기의 희생자 대다수는 월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무고한 사람들인 것이다.
물론 규제를 남발해서는 안될 것이다. 핵심이 되는 적정한 규제만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최상이다. 문제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린스팬 같은 사람이 자백한 것처럼, 사전적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된 규제가 사후적으로는 턱 없이 모자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위기의 결과는 엄청난 재앙인데 그 원인에 대해 사전적으로 불완전한 지식밖에 없으면서 규제를 해야 한다면 '과소규제'보다는 '과잉규제'가 낫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 경험을 보아도 그렇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과잉이라 할 만큼 많은 규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초부터 규제가 풀리기 시작해서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규제가 대거 풀렸다. 그 결과 1980년대 이후에 금융위기가 몇 배나 빈발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다른 면에서 성과가 나아진 것도 아니다. 2차대전 이후 1970년대 초까지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고도성장과 평등한 소득분배를 누렸지만 그 후 모든 면에서 성과가 후퇴했다.
이런 것들이 한국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금융 후진국 한국에게 남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영의 건전성을 위한 규제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한 상태에서 그러한 규제의 중요성은 몇 배나 증가했지만, 제대로 된 규제를 못한 결과 2008년에 외환위기가 또 한번 일어날 뻔 했다.
G20 회의 개최국의 사명
세계적인 시스템 재건도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오바마 미 대통령을 비롯해서 주요국 지도자들이 규제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시행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힘은 아직 막강하다. 의원 한 명당 로비스트 6명이라는 미국 의회의 구도에도 장애가 있다. 이런 여건 하에서 G20의 틀은 결코 의미 없지 않을 것이다. 올해 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 한국은 그런 논의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개혁이 추진력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다.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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