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멈추지 않는 제 심장과도 같은 어머니 덕분이에요."
29일 올해 서울대 정시모집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으로 음악대학 피아노학과에 합격한 김상헌(19ㆍ서울 한빛맹학교 고3)군은 엄마를 자신의 심장이라고 불렀다. 정작 엄마 이혜영(50)씨는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김군은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는 1급 시각장애를 앓고 있다.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도 어려웠지만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엄마는 형이 연습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흉내를 내는 상헌이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 뒤 피아노는 상헌이의 모든 것이 되었다.
중2 때부터는 전문적인 피아노 교육을 받았다. 악보를 볼 수 없었지만 지도교사가 녹음해준 음악을 틀어주면 곡을 그대로 외워서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5년 전부터 김군을 가르쳐온 한빛맹학교의 신현동 교사는 "오른손 왼손 양손을 모두 나눠서 녹음해 주면 상헌이는 이를 수도 없이 반복해 듣고 외운 뒤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라며 "피아노를 그만큼 사랑하는 학생"이라고 전했다.
"한 게 없다"는 엄마는 실은 숨은 공신이다. 김군에게 피아노 건반을 느끼게 해준 것도, 악보를 구할 수 없을 때마다 악보를 점자로 번역해주는 점역사에게 달려간 것도 엄마였다. 이씨는 "상헌이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순 없었지만 대신 좋은 청력을 선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상헌이는 고1 때부터는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이재혁 교사에게 점자악보를 배워 한 줄 한 줄 손으로 음표를 읽어 피아노를 연습했다. 더 어려운 곡을 소화하기 위해선 녹음만으론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시련도 있었다. 다리를 다쳐 3학년 1학기 내내 목발신세를 져야 했고, 지난해 10월엔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아 한동안 교습을 받을 수 없었다. 김군은 "지루하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대학에서 피아노를 더 깊게 공부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꿈도 품었다.
이번 특별전형에서 합격의 기쁨을 누린 장애학생은 더 있다. 지체장애를 딛고 사회과학대학에 붙은 하태우(18ㆍ마산 용마고)군과 인문대학에 합격한 조아영(18ㆍ세화여고)양 등 6명은 장애가 결코 부족함이 아니라 남들과 다를 뿐임을 온몸으로 입증했다.
■ 서울대, 고교 1013곳서 배출…서울 출신 2%P 줄어
서울대는 이날 특별전형 6명을 비롯해 올해 정시모집 합격자 1,429명을 발표했다. 합격자를 배출한 고교 수는 지난해보다 50곳이 늘어난 1,013개교였다. 전체 합격생 가운데 서울 출신 비율은 34.7%로 작년(36.7%)보다 2%포인트 줄었고, 광역시와 시ㆍ군 출신 학생 비율은 0.7~0.9%포인트 상승했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김경범 교수는 "올해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한 고교 수가 1,000곳을 넘어섰고 서울 출신 학생 비율은 소폭 감소했다"라며 "보다 다양한 지역의 상이한 배경을 가진 학생이 입학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특수목적고의 힘은 여전했다. 외국어고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국제고 등 특목고 출신 합격생은 총 903명(26.1%)으로 지난해(794명)보다 그 비중이 1.9%포인트 늘었다.
일반고 합격자도 2,441명으로 작년(2,352명)보다 다소 늘었지만 모집정원이 170명 가량 늘어난 걸 감안하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1%포인트 줄었다. 자립형사립고와 전문계고 출신은 80명과 6명으로 작년보다 각각 7명과 4명이 적었고, 검정고시 출신도 25명에서 17명으로 줄었다.
합격 여부는 서울대 홈페이지(snu.ac.kr)와 자동응답전화(060-700-1930)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는 미등록자가 생길 경우 다음달 10, 16, 18일에 추가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