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어린이책 박람회로 유명한 볼로냐 국제도서전에서 이란과 동유럽의 그림책을 보고 놀랐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그 나라 책들이 아주 근사했기 때문이다. 이란 그림책은 인쇄나 종이의 질은 떨어졌지만, 그림은 세계 최초의 제국 페르시아의 후예다운 강력한 문화적 전통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동유럽 그림책은 환상적인 일러스트가 많았다. 체코의 팝업북은 놀랍도록 정교했다. 이렇게 멋진 책들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구는 둥글다. 하지만 한국인이 번역서로 만나는 지구는 둥글지 않다. 교보문고가 지난해 1년 간 많이 팔린 책 1,000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거기 포함된 번역서 385종 중 미국, 일본, 영국 책이 75%를 차지한다. 좀 더 자세히 살피면 미국 책이 151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일본(90종), 영국(31종), 프랑스(20종), 독일(16종) 순이다. 브라질(11종), 스위스(8종), 중국(6종)이 포함되긴 했지만 아프리카, 중동, 스페인어권, 스칸디나비아, 동유럽, 동남아시아 등 빠진 지역이 허다하다.
이같은 쏠림은 비단 독서문화뿐 아니라 국제정치 역학부터 길거리의 유행까지 곳곳에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래도 책 읽기는 달랐으면 좋겠다. 책은 우리가 잘 모르는 낯선 세계를 사귀는 좋은 경로다. 그 점에서 번역서는 '둥근' 지구를 들여다 보는 창이라야 한다. 그러자면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나라들의 책을 소개하는 출판이 활발해져야겠지만, 책 읽는 사람도 편식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국적의 번역서를 찾아나설 필요가 있다.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신세계 탐험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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